김수현의 박물관 편지[24]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24]
  • 경남일보
  • 승인 2019.01.1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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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 박물관
빛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간 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여기 네덜란드에는 환한 빛을 통해 주위를 밝히는 전구로 세계 굴지 기업이 된 회사가 있다.

바로 필립스가 그 주인공이다.

집집마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필립스 제품에 대해 대단히 자부심을 느끼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생각을 조금 더 가까이서 읽어보기 위해 에인트호번으로 향했다.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서면서부터 보이는 축구경기장과 필립스 간판이 단번에 에인트호번임을 알려준다. 네덜란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바쁜 도시풍경이다.

네덜란드 남부에 위치한 에인트호번은 2002년 월드컵 신화를 이끌었던 히딩크 감독과 박지성,이영표 선수가 몸 담았던 PSV 에인트호번의 연고지다. 에인트호번에서는 이 축구클럽과 함께 필립스를 동시에 떠올리게 되는데, PSV는 네덜란드어로 ‘필립스 스포츠 클럽’이라는 뜻으로 필립스가 이 축구 팀의 스폰서임을 뜻한다. 1913년 프랑스로부터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창립된 PSV에인트호번은 명실공히 필립스와 함께 에인트호번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필립스와 에인트호번의 관계가 더욱 궁금해진다.

1891년 제라드 필립스와 은행가였던 아버지 프레드릭 필립스는 에인트호번에서 필립스를 탄생시켰다. 제라드는 네덜란드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한 후 엔지니어로 일을 하던 중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한 탄소전구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다. 전구에 커다란 매력을 느낀 제라드는 유럽일대의 전구 회사에서 일을 하며 전구 제조에 몰두했다.

이전까지의 전구는 충분한 빛을 발하지 못했고 수명 또한 짧은데다가 생산 단가가 높아 보급성에 한계점을 지니고 있었다. 제라드는 연구를 계속한 끝에 효율적이고 수명이 긴 탄소 전구의 제조공법을 알아냈다. 그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탄소 전구 제조업체이자 현 필립스의 시작점인 ‘필립스 앤 코’를 설립했고, 그 첫 번째 공장은 현재 필립스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에 첫 둥지를 틀었다. 제라드 필립스는 홀로 전구 개발을 시작해서 몇 년 후에는 또 다른 연구자들이 그의 사업에 합류 했고 필립스의 연구실은 세계적인 규모로 점점 확장 되었다. 그들의 연구는 전구의 밝기와 지속성을 더 높이고 마침내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큰 역할을 해냈다. 제라드는 오직 백열전구의 생산에만 집중했고 그의 결정은 회사의 전문성 신장과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당시 대부분 경쟁사들은 발전, 배선, 전등 등을 아우르는 큰 시스템을 운영했지만 제라드는 백열전구만 대량생산하는 것을 필립스의 전략으로 설정했던 것이다. 이것은 결국 필립스의 전구가 완전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가지면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게 된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필립스는 경쟁사였던 지멘스 등의 독일기업과 가격경쟁에서 밀리면서 그 후 몇 년간은 커다란 수익을 내지 못하며 파산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그러자 제라드의 동생 안톤 필립스가 투입되어 안톤의 능숙한 영업으로 회사를 회생시켰고 더욱 급진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이후 가족 단위의 체계 이던 회사를 주식회사로 변경하며 성장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필립스를 기반으로 한 에인트호번의 산업화는 많은 인구를 유입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했다. 이후 필립스는 전기면도기, 라디오 등을 생산하기 시작하며 전자제품 사업을 확장 시켰다.

그러나 필립스도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다행히 독일의 네덜란드 침공을 미리 알아챈 필립스 일가는 미국으로 건너가 회사를 계속 해서 운영했고 이후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제도로 회사를 서류상 이전 시키며 독일로부터 회사를 지켜냈다. 또한 안톤 필립스의 아들 프릿츠 필립스는 네덜란드에 남아 필립스 공장가동에 꼭 필요 했던 380여 명의 유대인을 나치 당국과의 협상을 통해 그들의 생명을 구하며 회사를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에인트호번으로 본사를 옮긴 필립스는 중심기술을 비밀리에 잘 보존했던 덕분에 전쟁의 여파에서 빠르게 복구 되었고, 텔레비전, 오디오 컴팩트, 카세트 등의 분야에 집중하여 사람들의 생활 속에 자리매김 했다.

2011년 필립스는 일자리를 대폭 감소시키고 텔레비전 제조 사업을 파기하는 등 다시 한번 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계속적인 재기를 꿈꾸며 사업 리모델링을 실행한 결과 사업을 두 가지로 분리시켜 헬스 케어 및 생활 부문과 조명사업을 분리 하여 각각 경영하기 시작했다. 필립스는 미래생활에 발맞춰 의료기기와 설비 사업에 집중하기 시작하며 여러 관련 업체를 인수 합병하는 등의 노력을 해왔다.

대표하던 조명 사업에 머무르지 않고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시키며 소비자의 필요에 귀 기울인 필립스는 현재 전자 제품과 헬스 케어 및 조명사업으로 발전을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최근 몇년사이 크게 확장 된 의료기기 및 장비는 CT 스캐너, 모니터링 장비, MRI 스캐너, 방사선 촬영 장비, 인공호흡 장비, 초음파 장비 및 엑스레이 등을 포함한다. 헬스 케어의 패러다임이 치료에서 예방으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필립스의 헬스 케어 제품들은 정확한 진단과 검진에 이바지 하고 있다.

필립스 박물관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전자제품들을 시간의 변화에 따라 전시 해놓고 있으며 체험공간을 마련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필립스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것은 필립스의 발전과정과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음과 동시에 그에 맞게 변해온 우리의 생활이 함께 비춰진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혁신인지 발전인지 구분조차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 필립스 박물관의 관람은 인류가 대단한 발전을 이루어 내었고 그 발전 중심에 사람 즉,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00여 년간 에인트호번은 4000여 명이 겨우 넘는 작은 도시에서 20만 명이 어우러져 사는 네덜란드 5대 도시로 변모했다. 이러한 변화에는 필립스가 가장 큰 역할을 했을 터. 고 부가가치 산업의 현장은 사람들을 에인트호번으로 대거 유입시켰고 역동적인 도시로 만들었다. 이러한 도시의 성장은 사람들에게 비단 일자리만 제공한 것 뿐 만 아니라 사람들이 생활하기 유익한 환경까지 제공했다. 또한 사람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노동환경과 처우 등을 꾸준히 개선해온 필립스는 에인트호번과 계속해서 공존하며 같이 성장해왔다.

우리가 여태까지 방문했던 박물관이 과거를 보존하여 현재와 소통하는 공간이었다면 필립스 박물관은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필립스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혁신은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만 의미가 있다는 필립스의 경영 모토처럼 사람들과의 소통은 인류에게 더 나은 미래와 발전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소통의 중심에 필립스와 에인트호번이 있다.



주소: Emmasingel 31, 5611AZ, Eindhoven

운영시간: 화~일요일 오전 11시~오후 5시

홈페이지: https://www.philips.nl/

입장료: 9유로, 6세 이하 무료



 
필립스 초창기 로고.
설립자 제라드 필립스(Gerard Philips,1858~1942).
현존하는 필립스 전구 중 가장 오래된 탄소 전구, 1897년 제작.
필립스 전구의 첫 공장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전시관. 전구의 제작과정,원리 등을 설명해주고 있어 아이들의 현장학습 장소로 인기가 많다.
현재 필립스 로고.
필립스 박물관 전시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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