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85)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85)
  • 경남일보
  • 승인 2019.01.14 17: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통문화체험장 박진사고택
곳간채에 있는 나락뒤주.


진정한 소통의 공간, 박진사고택

서양에서 들어온 문화에 익숙해진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전통문화보다 외래문화와 더 가깝게 지내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의 전통문화체험을 통해 한동안 잊고 지낸 ‘나’를 다시 발견하고 ‘우리’ 것의 소중함을 느껴보기 위해 경남과기대 시창작반 수강생들과 함께 고성군 개천면 청광마을에 있는 박진사고택(경남 고성군 개천면 청광6길 25-12)을 찾았다. 골목길에 접어들자 단아하면서 기품 있게 선 담장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황토와 돌, 기와를 번갈아 쌓아올린 담장 너머 옛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안고 솟을대문을 들어섰다.

박진사고택 대표 박상호 선생님께서 체험활동에 앞서 고택 안내부터 해 주셨다. 별당처럼 배치된 사랑채 쪽문으로 들어서자 앞뜰엔 작은 연못이 하나 있고, 연못 옆에는 용이 승천하는 형상의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대문간채에는 화장실과 목욕탕이 있었는데, 목욕탕은 명절을 맞이하거나 특별한 날이 오면 마을 사람들이 목욕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마을의 명소였다고 한다. 그리고 통시(화장실)는 위층에서 일을 보면 아래층에 기거하는 돼지가 만찬을 즐길 수 있는 복층 구조로 되어 있는 점이 특이했다.



 
복층 구조로 된 닭장.


중사랑채에는 눈에 익은 글씨체 하나가 필자의 시선을 끌었다. 다로경권실(茶爐經卷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글씨가 다실 현판으로 붙어있었다. 추사 선생의 제자였던 성파 하동주 선생이 박진사고택에 기숙하면서 그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자신의 애장품인 추사의 글을 조부 박용하 선생께 선물로 주셨다고 한다. 성파 선생은 3년 동안 서재인 청류정에서 머물면서 박용하 선생과 교유(交遊)한 각별한 사이였다고 한다. 다실 내부는 종부(宗婦)의 성품처럼 단아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종부이자 차 연구가인 최정임 선생님이 무릎 수술을 한 이후에는 좌식 다실보다 입식 다실인 소운당을 주로 이용하신다고 한다.

중사랑채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길은 닫힌 듯하면서 열려 있는 소통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곳간채 앞에는 2층 구조의 닭장과 단층 구조의 거위집이 눈에 띄었다. 옛스러운 멋이 그대로 느껴지는 명품 닭아파트다. 창고에는 디딜방아를 비롯해 말총갓 등 요즘엔 보기 드문 귀한 유품들을 보관해 놓고 있었다. 안채와 중사랑채, 사랑채는 고택체험 공간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다도교실 체험 중인 체험자들.
안채 뜰에서 염색체험을 하고 있는 체험자들.
햇볕에 말리는 방석피와 가방.


양반가의 멋과 맛을 만나게 해 준 전통문화체험

입식 다실(茶室)로 쓰고 있는 곳간채 한쪽에 나락뒤주를 모셔놓았다. 대나무로 만든 이 뒤주는 한눈에 봐도 정말 거대했다. 나락 스무 섬을 넣을 수 있는 크기다. 바깥쪽은 대나무를 쪼개어 촘촘히 엮어놓았고, 안쪽에는 여물을 썰어 황토와 섞은 뒤 특수한 풀을 제조해서 붙여놓았는데, 습도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매우 과학적인 발명품이라고 박 대표님께서 설명해 주셨다.

박진사고택에서 하는 전통문화체험활동은 다도, 염색, 요리 체험을 주로 하는데, 오전 10시부터 안채 뜰에서 염색 체험을 했다. 지난주에 쪽물로 염색해 놓았던 방석피를 오늘은 다시 황련, 황백, 양파에서 추출한 물로 3차례나 더 염색을 했다. 희한하게도 쪽빛이 노랑색을 만나니 아주 고상한 초록빛을 탄생시켰다. 바로 새로운 색 하나가 창조된 것이다. 빨랫줄에다 널어놓은 방석피와 가방도 하나의 예술품이지만 마당 기슭에 널린 염색물이 하늘과 기와, 그리고 건너편 산과 조화를 이룬 모습 또한 멋진 예술품으로 보였다. 박소희 강사님과 참가자들은 이 맛에 염색 체험을 한다고 했다.

점심 식사 뒤, 입식 다실인 소운당에서 다도 체험을 했다. 대홍포 차를 시음하면서 최정임 선생님께서 녹차의 오미론 강의와 함께 시낭송을 들려 주셨다. 마시는 녹차의 빛과 향, 맛에 한껏 품격을 높여주는 듯했다. 입안 가득 차향을 머금고 전통문화체험의 마지막 과정인 치유음식 체험을 하기 위해 안채에 있는 주방으로 갔다. 옛날 부엌을 리모델링한 주방 기둥에 남아 있는 그을음 자국이 토속적인 분위기를 돋워 주는 것 같았다. 우엉 빈대떡, 도라지 약밥, 대추 단팥죽, 수수전병 등의 전통음식을 만드는데, 오늘 만드는 찹쌀연근만두는 보통 만두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스무 가지가 넘는 재료도 그렇지만 만두피가 아예 없었다. 찰기가 강한 찹쌀가루와 감자전분을 넣어 점성을 높여서 그런지 예쁜 만두 모양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독특한 맛을 지닌 힐링푸드가 탄생되었다. 앞으로 주방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용기를 건네주신 요리연구가 정혜선 강사님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체험활동을 마치고 서재인 청류정(聽流亭)으로 갔다. 조부 박용하 선생과 성파 선생이 이곳에서 기숙하면서 정자 앞으로 흘러가는 계곡 바닥에 있는 너럭바위에다 글씨 수련을 했다고 한다. 물을 먹으로 삼고 너럭바위를 종이로 삼아 습자(習字)를 했다는 일화를 듣고 근검과 풍류, 낙천적인 삶을 실천한 용기가 부럽기도 했다. 대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글로 새긴 ‘조월경운(釣月耕雲, 물에 비친 달을 낚시질 하고 구름밭을 일군다)’이 청류정 현판으로 걸린 것을 보며 옛선조들의 가치관을 새삼 되새기게 했다. 청류정에 걸린 현판들을 도둑이 훔쳐가고 새로 복원한 현판을 걸어놓았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꿈이 익어가는 노년

나이가 든다는 말은 늙는다는 뜻일거다. 하지만 박진사고택을 지키는 박상호·최정임 두 분에게는 ‘늙어간다’가 아니라 ‘익어간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냥 세월에 나를 맡겨 살아가는 ‘늙어감’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삶, 그리고 그 꿈이 자신의 위치나 화려함을 꾸미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비워 세상을 꽉 차게 하는데 바탕을 두고 노후를 살아가는 모습에서 ‘익어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도 문화재로 지정된 박진사고택을 단순히 보존하는데 그치지 않고 고택에 밴 전통과 문화를 세상에 보급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삶을 살아가는 두 분에게서 아름답게 ‘익어가는 삶’을 만나는 동안, ‘나’를 찾아가는 비법 하나를 익힌 것 같아 참으로 뿌듯했다.

/박종현(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기품과 위엄을 갖춘 박진사고택의 담장.
청류정의 전경.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