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미(경상대신문 편집국장)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SKY캐슬’의 등장인물 ‘혜나’의 삶은 비참했다. 혜나는 엄마의 병원비를 벌며 소녀가장으로 살아갔다. 엄마의 죽음 후 찾은 아버지는 자신의 존재를 몰랐고, 혜나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라이벌의 아버지였다. 혜나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존재 자체가 골칫거리라는 말을 들은 그날,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했다. 고작 열아홉 나이였다.
그렇다면 과연 이토록 불행한 삶을 살다간 혜나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놀랍게도 혜나를 미워하는 시청자는 적지 않은 듯하다. 욕심이 많고 영악하다는 이유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혜나만큼 욕심을 부리는 라이벌에게는 관대하다. 가난한 아이의 욕심은 용납할 수 없지만 부잣집 공주의 생떼는 사랑스럽다. ‘쟤는 없는 주제에 착하기라도 해야지.’
이렇듯 약자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 요구는 현실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느 지역복지센터에 걸려온 전화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아이들이 프랜차이즈 일식집에서 돈까스를 시켜 먹었다. 그냥 분식집에서 먹어도 똑같이 배부를 일을 굳이 좋은 곳에서 기분 내며 먹을 일이냐. 내 세금으로 낸 돈 아닌가.”
지난 2017년 서울시의 한 구청이 쪽방촌을 대상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쪽방촌에서 2박 3일간 생활하며 봉사하고 지역민들의 어려움을 공감해보자는 취지라 밝혔다. 논란이 계속되자 행사는 결국 취소됐지만 주민들의 마음에는 상처가 남았다. 가난은 구경거리로 소비되어선 안 된다.
가난을 단순화한 이미지는 위험하다. 가난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가 ‘내가 이런 것을 해도 될까?’하고 자기검열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약자에게 행복 상한선을 두어서는 안 된다. 주제넘은 행복은 없다. 신경림 시인은 말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가난은 포르노가 아니다. 혜나의 욕심은 주제넘은 일이 아니다.
강소미(경상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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