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영화 운수 좋은 날
외국 영화 운수 좋은 날
  • 경남일보
  • 승인 2019.01.2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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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송희복-진주교대교수
송희복-진주교대교수

작년 가을이었다. 영화의 영문 제목이 ‘굿 데이즈 워크(Good Day’s Work)’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영화 ‘운수 좋은 날’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다. 나는 이 영화를 겨우 시간을 내어 보았다. 운수 좋은 날이라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제목이 아닌가. 현진건의 잘 알려진 소설 제목이다. 인력거꾼인 박첨지는 그날따라 승객이 많아 돈을 두둑이 벌인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이 중병에 앓아누워 있던 아내가 죽는 날이다. 이처럼 인생은 행·불행과 복·불복을 가늠할 수 없다. 행과 불행, 복과 불복은 항상 같이 따라다닌다. 모든 게 ‘생의 아이러니’이다. 영화 제목도 이렇게 붙여도 좋을 것 같다.

선량하지만 무능한 사내 아르민은 만삭의 아내와 어린 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오랜 무직 상태로 있다가 초등학교 경비직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응시자 두 명 중에 한 사람을 뽑는 면접 날에 예기치 않게 일이 꼬여만 간다. 면접하려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목격한다. 눈 앞에 뺑소니 교통사고가 벌어지고, 경찰에 급히 신고하고, 경찰의 진술 요구로 인한 번거로운 절차 때문에, 면접이 늦어져 그 바라고 바란 일자리를 놓치고 만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놓친 일자리, 초등학교 경비직을 차지한 중년 남자를 찾아가 일을 양보해달라고 애원한다.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말하면서. 그 사람은 손 기술이 있어서 소위 ‘투 잡’을 하는 사람이다. 벌이가 아주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찾아가 애원한 것이다. 뭐, 남의 일을 내 놓으라고? 직장도 차도 없는 주제에, 곧 둘째 아이까지 낳는다고? 심한 모욕을 당하자 격분하여 물건을 집어 들어 내리치고는 도망간다. 상대방이 죽지는 않았지만, 그의 죄명은 아마 살인 미수였을 것이다. 그는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목공 일을 배운다. 세월이 흐르고, 둘째 애가 태어나고, 모처럼 가족이 면회실에서 모두 함께 만나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 날은 운수 좋은 날, 이 날의 일(experience)은 참 운수 좋은 날의 일인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데, 희망의 빛이 보이기에.

이 영화는 개인의 운명과 문제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동유럽 발칸반도의 서남부에 위치한 한 나라의 실타래 같이 꼬인 사회 문제와 관련된다. 오랜 내전으로 경제 활동이 거의 마비되어 유엔의 구호물자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 영화에서도 수도 사라예보의 거리는 가을빛으로 활기 없이 황량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듯 안개가 자욱이 끼여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먹먹하고, 울울했다. 나 역시 오랜 기간에 걸쳐 무직 상태로 서울에 내버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 2월에, 나는 고등학교 교사직을 스스로 버렸었다. 하루라도 빨리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였다. 나는 이때부터 진주교대에 전임강사로 임용되기까지 8년 6개월간의 긴 무직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 기간에는 도시영세민으로 인정되어서 건강보험료도 7000원밖에 내지 않았다.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강사료에다 원고료만이 나의 기초 생활을 유지하게 했다.

안정되지 않는 개인의 일상에는 운수 좋은 날과 운수 나쁜 날이 늘 동전의 양면처럼 일희일비하게 한다. 이것은 또 사회의 이해에 따라 때로 상충하는 양날의 칼이 되어 어지럽게 춤을 추도록 한다. 그때의 나처럼 일용직과 비정규직이 많은 지금의 우리 사회에도 고용 불안의 그늘이 짓누르고 있다.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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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2019-02-13 13:52:00
박첨지가 아니고 김첨지요 교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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