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新시대정신을 찾아서
[기고]新시대정신을 찾아서
  • 경남일보
  • 승인 2019.01.2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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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규(진주향당 상임대표)
대체 젊다는 것은 무엇이던가. 거짓과 협잡이 난무하는 패악질을 두 눈 치켜 뜨고 맞서 자존을 지켜나가는 일이 아니던가. 더 나아가 기득권에 빌붙는 타락한 시대정신을 비웃고, ‘옳은 것’ 보다는 ‘유리한 것’만 찾아다니는 세상의 부조리를 깨뜨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던가. 주제넘게도 붓 한 자루 꼬나 쥔 시퍼런 청춘이, 오래 전, 이 거칠고 거친 세상에 뛰어 들 때는 적어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껏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천년 도시 진주의 속내에 정제돼 있는 진주정신의 살아있음을 말이다. 더불어 노쇠해 가는 육체가 정신의 격무를 견디지 못해 파탄하는 그 날까지 버티리라 다짐했다. 그것이 진주에서 살아 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모르게 어설픈 투사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과의 일에서 단지 서로 의견이 조금 다를 뿐인데도 결코 상대방을 인정할 수 없었다. 남의 일은 단점을 들춰내고, 무턱대고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그것이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그랬다. 그리고 거기에서 새롭게 맛보는 작은 특권과 기득권은 달콤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단지 껍데기일뿐 이었다는 사실을 알아 차리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거머쥔 작은 특권과 기득권을 지키려고 날마다 저지르는 불평등과 불공평에 눈을 감는 내 안의 거짓된 모습에도 개혁과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읽던 책을 내려 놓는 순간,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정수리에 찬 물 한바가지가 쏟아졌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내 안의 거짓을 찾기 보다는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데 더 익숙해져 있기에 더욱 그랬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겉으로는 올곧은 정신을 내세우면서도, 속으로는 자신만의 기득권을 쫓는 타락한 시대정신들이 많으리라. 어쩌면 나 자신도 그 중의 한 명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나와 주변 세계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는 원동력이 되는 ‘정신의 탄력’이란 명제는 여전히 유효해야 한다. 그것이 진주정신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혹시라도 한심하고 타락한 시대정신이 천년의 속내를 키워 온 진주정신을 왜곡하고 무참히 짓밟도록 내려 둘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으며 스스로 이렇게 다짐한다. 모래 위엔들 어떠랴. 무엇이든 세워라. 대신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워야 한다. 스치기만 해도 크고 오래 남을 상처가 남을 정도면 더 좋다. 설사 실패해 뼈에 사무치는 고통이 찾아와도 괜찮다. 그럴수록 다음 기회는 그만큼 재빠르게 오니까 말이다.

수없이 마음을 다잡고, 미리 예단해 미적거리지도, 꼼지락거리지도 말자. ‘말면 말지’ 하는 마음도 접어 두자. 구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고, 구함이 많을수록 번잡스런 것이 세상 이치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이루어지는 것은 단언코 없다.

무엇을 세우든, 시작부터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예감한다. 또한 누구도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편안하게 사는 게 어떠냐는 회유도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갖가지 이유가 따라 붙을 수도 있다. 어쩌면 지지부진하다가 슬며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 예측하고 시작했으니 괜찮다. 그 정도야 지금껏 수없이 겪어왔던 일이고 견뎌냈던 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단 하나만 믿자. 진실은 다래끼 돋은 눈꼽에도 끼어 있고, 미운 며느리 속옷에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엇이든 세워야 한다. 설사 허황된 꿈에 머물지라도, 이상만 가지고 처절한 현실의 벽을 허물려고 한 맹자의 우활(迂闊)함이라 비판받아도 좋다. 대신 절대 겁내지 말아야 한다. 상처가 남으면 어떠랴. 또 뼈에 사무치는 고통이면 어떠랴. 지금 뭔가를 세운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이 땅에 ‘시대와 함께 살고, 싸우고, 성찰하고, 증언하는 진주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올곧은 것은 반드시 살아남아 역사에 박힌다’는 시대정신을 실현할 할 때가 도래했음을 자각한다. 더불어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마음속에만 도사리고 있던 진주평론(晋州評論)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야 할 시기임도 직감한다. 진주평론이 진주의 역사를 바르게 기록하는 새로운 여정이 되기를 염원한다.

붓 한 자루 꼬나 든 시퍼런 청춘이 세월을 돌고 돌아 다시 세상에 뛰어든다. 딱 봐도 무모하다. 우활하다. 가시밭길이다. 근데 난 괜찮다. 함께 가는 길동무가 있기에 그렇다. 세울 것이다.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그 무엇인가를.
 
황경규(진주향당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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