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월 이라크 전쟁 발발
1991년 1월 이라크 전쟁 발발
  • 박은정
  • 승인 2019.01.2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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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월 전 세계의 눈이 페르시아만에 쏠려 있었다. 지난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촉발된 페르시아만의 긴장상태는 여전히 미국의 이라크 철군시한 경고에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미국 등 서방세계와의 전쟁이 장기전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을 대표로 하는 44개국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폭격하는 사막의 폭풍 작전을 1991년 1월 17일 개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편성된 연합군 중 가장 큰 병력을 보유한 군사동맹이 탄생했으며 우리나라도 의료지원단 154명을 비롯한 비전투 병력 314명을 파병했다.

 미 전투기가 이라크의 도시를 폭격하는 상황이 CNN을 통해 실시간 보도되는 장면은 게임의 한 장면처럼 흥미로운 볼거리로만 부각됐다. 직접적으로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들에게 전쟁은 게임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걸프전은 방송을 통해 생중계 된 최초의 전쟁이 됐다. 후에 걸프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시뮬레이션 게임이 출시돼 인기를 끌기도 했다.

 걸프전의 결과 쿠웨이트는 해방됐지만 이라크군은 후퇴하면서 정유시설을 파괴해 페르시아만 오염이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걸프전은 최첨단 무기 앞에서는 100만 대군이라도 소용없다는 것을 보여준 전쟁으로 당시 다국적군의 인명피해는 전쟁의 규모에 비해서 매우 경미했다.


 
 
1991년 1월 17일 1면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라크군이 철군 시한 만료에도 불구하고 타협의 의사가 없음을 거듭 확인했다며 다국적군이 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는 기이다. 이에 우리나라도 전 공직자의 비상근무 태세를 강화하고 유관부처 직원들의 연가를 자제토록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또 페르시아만 사태와 관련하여 임시국회를 소집하기에 앞서 의료진 파병 등에 관한 논의와 관련 상임위 소집을 적극 검토한다는 단신도 눈에 띈다.


 
 
1991년 1월 18일 1·11면

‘사막의 폭풍’ 작전 명령(Operation Desert Storm)이 개시됐다. 17일 드디어 본격적으로 이라크가 점령한 쿠웨이트지역에 공습이 이뤄졌다.

 1면 제호 밑에 “경남일보는 1월 17일 다국적군의 이라크 공습이 있은 후 진주 등 도내지역에 호외를 제작 배포했습니다”라는 알림문구가 보인다. 같은 날 11면에는 경남일보 호외를 통해 ‘걸프전 발발’기사를 읽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국은 강력한 공군력을 이용해 이라크 전역의 방공망을 무력화시키고 발전소, 군 지휘부, 통신시설, 생화학무기 공장들을 중심으로 타격해나갔다. 39일에 걸친 대대적인 공습으로 육상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라크군을 거의 괴멸상태에 빠트렸다.

 지상전을 벌인지 100시간 만인 2월28일, 미국은 전쟁종식을 선언했다. 이라크군은 20만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냈다. 이에 비해 다국적군 사망자는 378명에 그쳤고 이중 미군은 150명이 전사했다. 최첨단 무기 앞에서 재래식 병력의 숫자는 무의미하다는 것이 완벽하게 증명함과 동시에 미국을 세계 경찰국가로의 위상을 만들어준 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걸프전의 결과는 단순히 이라크의 몰락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본 제3세계 국가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오늘날 세계 각국이 최첨단 무기와 최신예 전투기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된 계기도 걸프전으로 인한 전쟁 패러다임의 변화 때문이라는 분석이 크다. 


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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