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LH와 중국 고대도시 동행
[기고]LH와 중국 고대도시 동행
  • 경남일보
  • 승인 2019.01.2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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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명(전 하동교육장)
최길명
최길명

그 누가 말했던가, “여행은 가슴 떨릴 때 가야지 다리 떨릴 때 가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떨릴 땐 떨리더라도 세월 탓으로 돌리고 무조건 떠나야 한다. 지난해 말, LH 박물관에서 주선한 중국고대도시 답사에 동행하면서 가슴 떨리는 시간에 젖어 다리 떨림을 잊어버린 5박6일이었다.

세상 공기 답답하고 삶에 무게를 느낄 때 먼 곳으로 훌쩍 떠난다는 게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모른다. 답사보다는 여행이라는 표현이 덜 부담스럽지만 가는 곳마다 중국을 새롭게 배우고, 우리 현실과 미래에 대한 생각들로 어느 한 곳 허투루 지나치지 못했으니 답사인 게 분명했다. 해박한 지식을 가진 관계자들이 답사의 격을 더욱 높여줘 패키지여행에선 얻을 수 없는 감동과 진지함 그 자체였다.

이번 답사는 중국 고대도시 소주, 항주, 남경, 양주 네 곳이었다. 소주와 항주는 ‘천상천당 지하소항’이라 불릴 정도로 번성했던 고도이다.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고 오와 월의 전쟁 중에 ‘와신상담’의 고사와 미인계로 유명한 서시의 숨결이 있는 곳, 중국문화를 고스란히 품은 정원들, ‘적벽부’로 불후의 명작을 남긴 소동파, ‘사고전서’와 많은 유물을 지체할 수 없을 정도로 수장한 박물관, 윤봉길 의사 의거 후 상해에서 옮겨온 대한민국임시청사, 영화 ‘붉은 수수밭’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폐회식을 연출한 장예모 감독의 인상서호 등, 마르코 폴로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할만한 곳이었다.

남경은 중국의 4대 고성 중 하나로 명·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대국가의 도읍지였다. 육조문화의 중심지였고 백제의 대외교류와 관련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근대사에서는 아편전쟁의 패배로 굴욕을 당해야 했던 남경조약과 남경대학살이라는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명을 세운 주원장이 수도로 정하면서 축조한 33.6㎞에 달하는 현존하는 세계 최대 성벽, 그의 능에는 군사 5500명이 지키고 사슴 1000마리를 길렀다고 했다. 중국역사에서 가장 광적이고 비참했다는 태평천국의 난 같은 영욕의 역사를 간직하면서도 한편으로 엄청나게 발전한 도시의 모습은 놀라움을 넘어 힘에 눌림을 느끼기도 했다.

양주는 황하와 장강을 거쳐 남북을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대운하의 끝자락에 있는데 양자강 유역의 으뜸가는 상업도시로 번창했던 곳이다. 만리장성을 수축하고 남북으로 통하는 대운하를 완성한 수나라 2대 황제 수양제의 역사가 서려있다. 또한 신라 최치원 선생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 장원으로 합격하고 ‘토황소격문’으로 명성을 크게 떨친 것을 기리는 기념관이 있는데 중국 현지에 세워진 최초의 한국 위인 기념관이다.

모두가 놀랍고 뭔가 모를 압박감이 느껴졌다. 서울의 부유하고 번화함이 이보다 더 할까. 중국은 고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찬란한 문화유산에 기반을 두고 21세기 실크로드를 열겠다며 ‘중국 몽’이나 ‘일대일로’를 추진 중에 있다. 이를 완성시킨 다음에는 봉건시대 제후들을 줄 세우듯 중국 중심의 수직적 질서를 강조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드를 핑계로 단체관광객을 끊어 버린 그들, 우리에겐 모욕이고 그들에겐 대국임을 의심케 하는 행위지만 중국은 주변국을 위협하기 위해 약탈적 경제를 이용하고 관광산업마저 무기화할 수 있는 규모의 힘을 갖게 되었다. 이런 중국과 싫든 좋든 등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우리의 운명이다. 굴욕적이고 비굴한 이런 상황을 언제까지 감내해야 할 것인지 가슴이 답답했다.

“시대를 앞서가지 못하면 시대에 잡아먹힌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지금 좁은 반도의 반 토막에서 겁 없이 우쭐대고 있는지 돌아보자. 대국의 치밀한 책략을 읽어내고 대책을 모색해도 모자랄 판에 갈등만 빚고 있는 우리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전쟁의 패배는 장군들의 전술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정치논리 때문에 패배한다”는 진리를 새삼 강조하고 싶다.

 

최길명(전 하동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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