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자 192명…아직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사상자 192명…아직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 양철우
  • 승인 2019.01.2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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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밀양 화재참사 1주년, 다시 가본 세종병원

 

45명이 숨진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참사 1년여를 앞둔 24일 세종병원 건물이 인적이 끊겨 을씨년스럽다. 김지원기자

부실한 소방시설, 거동불편한 고령의 환자들, 삽시간에 퍼진 불…피해 클 수밖에 없었다.
피해 의료진 일부환자는 소송진행 중이다. 시는 병원을 상대로 구상권 청구 예정이다.

검찰은 병원을 운영한 이사장에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선고는 내달 1일이다.
26일 오후 2시에 현장에서 참사 1주년 추모제가 열린다.

1년전 2018년 1월26일 금요일 이른 아침. 밀양 세종병원은 화염에 휩싸였다. 192명의 사상자를 낸 밀양 세종병원 불은 5층짜리 병원 건물 1층에 있는 응급실 탕비실 천장에서 시작됐다.

‘불이 났다’는 119신고가 접수된 지 3분만인 오전 7시 35분 밀양소방서 가곡센터 소방대와 밀양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수십대의 소방차부터 엠블런스, 경찰차량과 소방대원·공무원·경찰·시민들이 뒤엉켜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세종병원은 입구부터 유독가스와 함께 화염이 집어 삼켰다. 목숨을 건 소방대원들의 진화직업과 구조대원·공무원·시민들이 환자를 업거나 담요에 싸서 환자들을 대피시켰다. 유독가스를 마신 환자들의 호흡기 부위는 시커먼 거을음으로 변했고, 산소 호흡기를 부착한 환자까지 대피 현장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화재 당일에만 입원환자, 의사, 간호사 등 37명이 숨지고 143명이 다쳤다. 밀양시는 사망 45명, 부상 147명 등 세종병원 화재 사상자를 192명으로 최종 집계했다. 40명이 숨진 2008년 1월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이후 최근 10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화재 중 최악의 인명피해다.

소방 관계자는 당시 피해가 많았던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우선 화염과 연기를 차단하는 방화문 등이 부실했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대부분인데 삽시간에 유독가스가 확산됨 점, 고령의 환자들, 또 일부 환자들이 침상에 손과 발이 묶어 대피하는 데 시간이 걸린 점 등을 꼽았다.

◇그날의 상흔 그대로=1년이 지났다. 아직도 세종병원 현장은 그날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었다. 병원 정문과 응급실 출입문은 철제 펜스로 둘러쳐져 완전히 차단됐다. 당시 화재로 깨진 유리창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2층과 3층 벽면에는 지운 흔적은 보이지만, 당시 연기로 그을렸던 자국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깨진 유리창 너머 보이는 시커멓게 그을린 천장도 그대로 였다. 적막감만 나돌았다. 이 때문에 병원 주변은 직격탄을 맞았다. 40년 넘게 영업을 해온 약국도 문을 닫고 주변 상권은 상당수 임대를 내놓았지만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세종병원 맞은편 가게인 진보상회 주인 김영조(73) 씨는 “가게를 찾은 세종병원 환자들, 직원들이 물건도 사주고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곤 했는데…”라며 “이제는 사람 발길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유동 인구가 준 이유 때문인지 문이 굳게 잠긴 채 먼지가 쌓인 창틀 사이로 ‘임대’ 표시를 한 가게도 여러 곳 눈에 띄었다.

◇유족들 죄책감에 시달려=유족들도 상처가 이직 아물지 않았다. 유가족 대표를 맡은 김승환(62) 씨는 “집 가까운 곳이라서 세종병원에 모셨는데 이런 사고가 나 후회와 죄책감이 든다”며 “장모님이 밀양으로 돌아온다고 해 좋아하셨는데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김 대표는 화재 발생 일주일 전에 창원의 종합병원에 입원해 있던 장모를 세종병원으로 옮겼다. 그는 “집 가까운데 장모님을 모시려고 한 것이 이렇게 됐다”며 “장모님이 밀양으로 돌아온다고 좋아하셔서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한 점이 마음이 걸린다”고 털어놓았다.

김 대표는 주부 이모(당시 35살) 씨의 사망 사실을 가장 안타까워했다. 노인들이 많은 지방 소도시 특성상 세종병원 사망자 80% 이상이 70대 고령이었다. 이 씨는 세종병원 사망자 중 가장 나이가 어렸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이 씨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화재 발생 한 달 전쯤 세종병원으로 왔다. 12살 나이 많은 띠동갑 남편 사이에서 낳은 뇌병변 장애아들(15)은 졸지에 엄마를 잃었다. 김 대표는 “어린 자식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여전히 아프다”고 말했다.

45명이 숨진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참사 1년여를 앞둔 24일 세종병원 인근 상가가 한낮인데도 셔터문이 닫혀 있다. 연합뉴스


◇ 희생자 45명 중 40명 보상…5명은 합의거부 민사소송 진행=화재로 숨졌다고 인정된 45명 중 40명은 위로금과 생활안정자금 형태의 보상을 받았지만, 당직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젊은 환자 등 5명은 합의를 거부해 소송을 진행 중이다. 보상받은 40명 가운데 26명은 세종병원을 운영하는 효성의료재단에서 보상했고, 14명은 밀양시에서 5억1500만원을 우선 지급했다. 밀양시는 세종병원을 상대로 구상권 청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세종병원 건물 등 재산은 주거래 운행과 건강보험공단 등 채권자들이 가압류한 상태다. 병원 직원들도 급여 때문에 가압류를 했다.

이들 민사소송 외에도 창원지검 밀양지청은 지난해 3월 15일 병원을 운영한 효성의료재단 이사장 손모(57) 씨, 병원장 석모(54) 씨, 총무과장이자 소방안전관리자 김모(38) 씨, 행정이사 우모(60) 씨 등 병원 주요 간부들을 재판에 넘겼다. 지난해 12월 21일 결심공판이 열렸다. 검찰은 이사장 손 씨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총무과장이자 소방안전관리자 김 씨에게는 금고 3년을, 행정이사 우 씨에게는 징역 5년을, 병원장 석 씨에게는 징역 3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1심 선고는 다음달 1일이다.

◇밀양시 상처치유에 적극 나서=밀양시는 화재가 발생하고 난 후부터 유가족과 부상자 관리에 진력하고 있다. 지난해 11월께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화재예방 전기시설 설치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는 자치단체 예산으로 전기안전진단을 실시하고 노후주택 전기시설 개선시에는 비용의 절반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올해 1월 2일부터는 사회재난담당이라는 별도의 조직을 꾸렸다. 밀양시는 또 화재로 유탄을 맞은 지역 상권을 회복하기 위해 가곡동 일원 20만2000㎡에 대한 도시재생뉴딜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 23일 주민공청회를 시작으로 2월초께 국토교통부 공모사업에 신청할 예정이다. 3월께 발표가 되며 인프라 개선이 주요 사업 내용으로 모두 250억원 가량 투입된다.

한편 밀양시는 26일 오후 2시에 참사 1주년을 맞아 세종병원 현장에서 추모제를 연다.양철우기자 myang@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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