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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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1.2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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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에 시를 담은 정두수 선생
노래에 담긴 슬픈 사연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번 보고/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보며/서울로 떠나간 사람 천리타향 멀리 가더니/새봄이 오기 전에 잊어버렸나/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는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나훈아가 불러 크게 인기를 얻은 노래 ‘물레방아 도는데’의 1절이다. 이 가사는 서울로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노래엔 우리가 잘 모르는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

이 노래를 작사한 정두수 선생의 회고담에서 다음과 같이 그 사연을 풀어놓았다. ‘내 나이 일곱 살 때 당시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패전위기에서 발악하던 일제는 조선 학생들까지 모조리 사지(死地)로 내몰았다. 이 노래 ‘물레방아 도는데’의 주인공인 내 삼촌도 그렇게 끌려갔다. 일본 와세다대학에 다니던 삼촌은 우리 집안의 희망이었다. ‘학병’이라는 띠를 두르고 생가마을 성평리를 떠나던 날, 할머니와 연인인 순이를 두고 물레방앗간을 돌아 돌담마을 성평리 앞을 흐르는 주교천의 징검다리를 건너가던 것이 삼촌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듬해 삼촌은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왔다. 아들을 먼저 보낸 할아버지는 이후 시름시름 앓다가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떴다. 그 뒤 2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어항 속에서 돌아가는 장난감 물레방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뽀르륵-’ 소리를 내면서 어항 속에 갇힌 금붕어는 쉴 새 없이 맴을 돌았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나는 삼촌의 얼굴이 떠올랐다. 돌아가는 물레방아 속에서 삼촌은 부활하고 있었다. 민족의 수난과 온갖 고초의 아픈 역사를 가슴으로 껴안으면서 남의 전쟁터에 끌려가야만 했던 삼촌을 떠올리며 삼촌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시로 썼다.’

옛 자취만 남은 시오리 솔밭길

노래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나면 노래의 의미가 새롭게 가슴에 닿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이야기가 담겨 있고, 웃음과 눈물이 배어있는 노래가 대중가요다. 그 대중가요의 내용을 시적인 감성으로 작사하여 가요의 품격을 한 차원 끌어올린 작사가가 곧 정두수 선생이다. 그의 선친은 큰 아들 정공채 시인에게 공자와 같은 품성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공채’, 작은 아들에겐 두보와 같은 문장가가 되라고 ‘두채’(예명은 ‘두수’)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름처럼 좋은 노랫말을 많이 작시를 했는데, 무려 3500편이 넘는다고 한다. 정두수 선생은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인데, 형인 정공채 또한 시인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형과는 다른 작사가의 길을 걸었는데 거기엔 경제적인 여건도 작용했던 것으로 짐작이 간다. 당시 시 1편의 고료가 3백 원이었고, 반면 작사 1편은 2000원이 넘었으니까 시인이 되느냐 작사가가 되느냐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두수 선생의 노래 가사는 매우 서정적이고 시적이다. 마포종점, 흑산도 아가씨, 덕수궁 돌담길, 가슴 아프게 등이 있는데, 음악평론가들로부터 대중가요의 품격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시창작반 수강생들과 함께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대중가요 작시에 한평생을 바친 정두수 선생의 고향인 하동군 고전면 성평마을과 배드리공원, 시오리 솔밭길을 찾아 떠났다. 배드리공원에는 가황 나훈아가 부른 노래 ‘물레방아 도는데’와 진송남이 부른 ‘시오리 솔밭길’ 등 두 개의 노래비가 기품있게 서 있었다. 이 두 노래를 작시한 주인공이 정두수 선생이다.

솔바람 소리에 잠이 깨이면/어머니 손을 잡고/따라나선 시오리 길/학교가는 솔밭길은 /멀고 험하여도/투정없이 다니던 꿈같은 세월이여/어린 나의 졸업식날 홀어머니는/내 손목을 부여잡고 슬피 우셨소/산새들 소리에 날이 밝으면/어머니 손을 잡고/따라나선 시오리 길

‘시오리 솔밭길’의 가사 1절이다. 선생이 태어난 성평마을에서 주성마을, 고하마을(하동읍성), 홍평마을, 범아리 율촌마을에 있는 고전초등학교까지의 거리가 시오리 길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학교에 가던 추억을 떠올리며 지은 노래다. 어린 나이에, 봄이면 보리피리를 불고 여름이면 풀피리, 찬바람이 불 때면 휘파람을 불며 먼 길을 다니면서 선생은 시인의 꿈을 꿨을지도 모른다. 그 시오리 솔밭길이 선생의 시심을 키운 텃밭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 텃밭에서 키운 노래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저마다의 그리움을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오리 솔밭길의 일부는 농로로 남아있고, 무성한 풀숲이 옛길의 자취를 덮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주교천에 놓인 징검다리와 성평마을에 있던 물레방아는 이제 다 사라지고, 배드리공원에 그 옛날의 것을 더듬어 흉내만 내놓고 있었다. 주인이 바뀐 정두수 선생의 생가는 새로 복원한 돌담만이 빈집을 지키고 있었다.

노래와 시가 흐르는 주교천 둘레길

배드리공원 옆 배드리장터문화회관 2층 정두수·정공채 기념관에는 노래에 시를 담아낸 정두수 작사가와 원고지에 대중의 애환을 노래한 정공채 시인의 삶과 예술적 업적을 기리는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고하마을의 하동읍성과 신덕마을의 왕비샘, 그리고 성평 마을을 끼고 흐르는 주교천 둑방을 따라 조성된 서정적인 둘레길은 힐링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파란 겨울 하늘을 담아 흐르는 시냇물의 속도에 맞춰 노래와 시를 읊조리며 천천히 걸어가면 세상의 모든 시름이 주교천 맑은 물이 다 헹궈 줄 것 같았다. 팍팍한 세상 넉넉히 건너갈 풍성한 정서를 충전해서 돌아오는 필자의 발걸음이 가다 서다 엇박자인데도 흥겨운 듯 신명이 나 있었다.

/박종현(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시오리 솔밭길 노래비.
시오리 솔밭길 노래비.
정두수 선생의 모교인 고전초등학교 전경.
배드리공원 호숫가에 있는 물레방아.
정공채, 정두수 기념관.
주교천 강둑 따라 조성된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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