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편지가 그리운 날에
손편지가 그리운 날에
  • 경남일보
  • 승인 2019.01.29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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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주(초록우산 후원회 사무총장)
노병주
노병주

모처럼 책상서랍정리를 했다. 몇 번이고 결심을 했었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데는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마음먹은 일을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매번 눈으로만 대충 훑고 지나가며 다음을 기약하던 내 게으름을 반성하게 되는 순간이다. 크지도 않은 책상서랍 안에 무슨 그리도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는지 이것저것 꺼내놓고 보니 없는 것이 없다.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않아 잉크가 말라버린 오래된 만년필과 볼펜, 연필, 편지꾸러미 등… 하나같이 손때가 묻은 참 친근한 것들이다. 특히 그림엽서가 유행하던 시절 이곳저곳을 다니며 모아둔 그림엽서 꾸러미를 보는 순간 그동안 잊고 있었던 몇 십년의 세월이 한꺼번에 고개를 들고 서서히 일어선다. 나의 과거가 나의 옛 일상이 색바랜 수첩 속의 흘림체 글씨 속에서 하나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다. 조용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아하! 그땐 그랬었지

그러다 문득 눈에 띄는 한통의 편지봉투를 발견하게 된다. 세월만큼이나 색이 많이 바랫지만 그래도 참 색깔이 고운 연보랏빛 한지봉투다. 봉투앞면 오른쪽 위엔 80원짜리 크낙새그림의 우표가 붙여져 있고 그 옆에는 크리스마스씰이 한 장 더 붙어있다. 그땐 그랬었던것 같다. 연말이 다가오면 결핵퇴치운동 기금마련을 위해 발행되어지는 크리스마스씰을 사서 우표랑 같이 붙여 보내는게 유행이었던 것 같다. 파란 잉크의 펜글씨가 너무나 정성스럽고 반듯하여 정갈하기까지 하다. 그러다 편지지를 펼치는순간 다시 한번 탄성을 지른다. 유난히 야생 들국화를 좋아했던 친구가 그해 가을 직접 산에서 따온 들국화 한 점을 편지지에 고이 넣어 보낸 것이다. 한줄 한줄 손수 써내려간 펜글씨 속에서 들국화의 향이 묻어 나온다. 눈동자가 맑고 솟아오른 뽀얀 손등이 복스러웠던 옛친구의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세월 속으로 세월 속으로 자꾸만 빠져들게 만든다. 희미한 옛추억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 오른다. 힘차게 펄럭이는 교정의 깃발이 보인다.

가끔씩 손편지가 그리울 때가 있다.손편지로 글을 써서 진심을 나누고 우정을 노래하던 그때가 그립다.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로 즉석에서 소식을 주고받는 편리한 문명 속에 살고 있지만 사라져가는 빨간 우체통이 아쉽고 문방구에서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고르고 우체부아저씨의 답장을 기다리던 가슴 설렘이 그립기도 하다.펜을 들고 직접 글쓰는 일이 줄어들다보니 요즘 아이들은 너무나 엉망인 글씨 때문에 자필이력서도 대필해야할 지경이라는 이야기가 안타깝다. 아쉬운게 어디 글씨뿐이랴!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그립기만 한 오늘이다.

 
노병주(초록우산 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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