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키움교실 활성화 사제동행 문화탐방[1]
꿈키움교실 활성화 사제동행 문화탐방[1]
  • 강민중
  • 승인 2019.01.30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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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 배움이 즐거운 '행복한 어울림'

식민지배 아픈 역사는 같지만 일본에 우호적
중국 본토와 관계 등 시대적 상황 우리와 달라

경남도교육청이 주최하고 경남일보가 주관하는 ‘꿈키움교실 활성화를 위한 사제동행 먼나라 이웃나라 문화탐방’행사가 이달 중순 도내 서부·동부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만과 중국에서 각각 마련됐다.

매년 겨울방학시즌에 맞춰 열리고 있는 ‘사제동행 문화탐방’은 학생들이 해외 속 우리 문화를 돌아보며 민족의 정신과 혼을 되새기고 위대함을 느끼는 계기가 되고 있다.

또 학업에서 잠시 벗어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을 계기로 학교 적응력을 높이고 꿈을 찾는 자아 발견의 시간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이번 ‘사제동행 문화탐방’은 규모를 확대해 두차례로 기획됐다. 8일부터 11일까지 서부권 10개 고등학교 2학년 학생과 인솔교사 등 총 56명(꿈키움교실 및 다문화가정, 국가유공자자녀 등)이 대만으로 문화탐방을 떠났다.

이어 2차 캠프는 21일부터 24일까지 동부권 10개 중학교 2학년 학생과 인솔교사 56명이 중국 상해, 항저우를 방문해 견문을 넓혔다.

학생들은 상해 임시정부청사, 서호 유람 유네스코 세계유산,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한 홍구공원, 국내드라마 촬영지 등 수십 수백년 역사를 거슬러 오르며 그들의 문화 속에 스며있는 우리의 문화를 찾았다. 이를 통해 세계 속의 한국을 몸소 체험했다.

특히 사제동행 행사인 만큼 학생과 교원, 학생과 학생이 공동체 생활을 통해 서로간의 존중과 사제간의 정을 쌓는 기회가 됐다.

허인수 학생생활과장은 “학생들이 중국과 대만 방문을 통해 우리역사의 위대함을 느끼는 동시에 상상력과 통찰력을 기르는 계기가 됐다”며 “사제동행 탐방인 만큼 교사와 학생이 함께 배우고 즐기면서 따뜻한 정을 나누는 의미있는 시간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남일보는 3박 4일간의 강행군을 펼친 ‘꿈키움 교실 활성화를 위한 사제동행 먼나라, 이웃나라 문화탐방’을 대만과 중국으로 나눠 총 4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주

 

일제 식민지 시절의 총독부 건물은 현재 대만 총통이 머무는 총통부 관저로 활용되고 있었다.

<1>우리와 같은 듯 다른 나라 ‘대만’

◇식민통치 역사에도 일본에 우호적


1996년 아픈역사의 상징이었던 조선총독부 청사는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 청산을 이유로 청사와 관사를 철거했다. 철거장면은 TV를 통해 대대적으로 생중계 되면서 우리의 기억속에서도 잊혀졌다.

그렇게 잊고 있었던 조선총독부의 기억은 철거 20여년만에 우리나라도 아닌 대만에서 되살아났다.

한국 보다 더 긴 51년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겪은 대만이었지만 수도 타이베이에는 여전히 총독부 청사가 존재했다.

그것도 대만의 수장 총통이 머물고 있는 총통부로 사용되고 있었다.

첫날 대만 공항에서 내려 시내 중심부를 지나자 차창밖으로 위용(?)을 드러냈다.

“대만 총통이 머물고 있는 옛 일본 총독부 건물입니다. 여러분들은 이해가 잘 안되시죠.” 가이드의 설명에 창가에 눈을 고정한 학생들의 입에서는 탄식이 배어 나온다.

일본에 유독 예민한 우리다. 거기에 우리나라에서 총독부 건물은 전국민이 보는 가운데 다이나마이트로 폭파시킨 건물이 아니던가.


식민지시절 일본의 총독부를 그냥 박물관 정도도 아닌 총통부로 사용한다는 대만의 사고방식을 학생들은 이해하기 힘들 법도 하다.

잊혀진 이미지를 되살리려 과거 조선총독부 건물을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외부마감재가 적벽돌로 사용된 것을 제외하면 과거 조선총독부 건축과 비슷한 모양이다.

중앙고층탑을 중심으로 조선총독부와 같은 날일(日)자 형 건축으로 총 5증건물로 지어졌다.

구 대만총독부청사는 한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나던 해인 1919년 완공됐다고 한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조약에서 전리품으로 대만섬과 부속열도들을 청제국으로부터 영구 할양 받아 최초의 식민지를 차지하는데 1895년부터 행정, 군사 업무의 전권을 위임받은 총독을 임명해 본격적 식민지 통치를 시작했다.

1949년 국민당 정부의 대만철수 이후 중화민국의 ‘임시수도’의 ‘임시총통부’청사로 시작해 여러 총통을 거쳐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청사 2층에 총통집무실이 있다.



 

대만 초대 총통인 장개석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중정기념당은 넓은 마당이 조성돼 지역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공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대만 초대 총통인 장개석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중정기념당은 넓은 마당이 조성돼 지역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공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산 3·15의거와 비슷한 대만 2·28사건

3박 4일간 대만을 여행하며 우리 탐방단이 가장 놀란 것은 우리와는 너무 상반된 일본에 대한 우호적 인식이었다. 대만은 우리보다 10여년 더 긴 식민지배를 당했음에도 그들에게 일본은 동경의 대상인듯 보였다.

“자존심도 없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학생들의 반응이 이어진다. 궁금증을 품은 학생들의 시선은 수십년째 대만에서 살고 있다고 소개한 부산출신 가이드에게 쏠렸다. 가이드도 처음 대만에 와서 가장 놀란 부분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만은 식민지배 상황, 중국 본토와 관계 등에서 시대적 상황이 우리와는 많이 달랐다고 했다.

여기에 해방후 1947년 발생한 한 사건이 불을 지폈다.

우리지역의 마산 3·15의거, 제주 4·3사건과 자주 비교되는 대만의 2·28사건이다.

중국 대륙출신의 전매청 관리가 담배를 몰래 팔던 대만여인을 폭행했고 이를 보고 항의하던 대만인들에게 경찰이 발포, 학생 한명이 사망하면서 촉발됐다.

사건 다음날인 1947년 2월 28일 대만인으로 구성된 시위대가 시가지를 점령하고 관공서를 불태우자 이에 맞서 정부군이 무차별 발포한다. 이에 맞서 시위대가 무기고를 습격하고 2월8일 국민당 당수 장개석의 명령으로 대륙 본토에서 파견된 군병력 2개사단이 대만에 상륙해 무력으로 수만명을 학살한 후 계엄령을 선포한 사건이다.

이후 무고한 대만인들의 학살과 중국본토에서 건너온 국민당 정부군, 지배층 위주의 국가발전과 정부운영 등으로 일제시대를 겪었던 대다수의 대만인들은 오히려 정부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렇게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오히려 식민지배를 했던 일본에 호의적인 사회분위기를 만들게 됐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우리는 최근 과거 청산과 인권교육에 많은 노력들을 해오고 있다. 경남만 보더라도 지난해는 경남교육청과 제주교육청은 마산 3·15의거와 제주 4·3사건을 주제로 하는 테마형 수학여행과 교원 평화·인권교육 연수교류를 내용으로 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여기에는 마산 3·15의거와 제주 4·3항쟁이 가지는 공통 가치와 역사적 의의를 탐구하는 교원 평화·인권연수 교류를 활성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아픈 과거를 돌아보며 교원과 학생들의 인권지수를 더욱 높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당시 박종훈 교육감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처럼 역사를 배우고 교훈을 살려가는 교육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우리들의 사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렇듯 우리는 지금 과거의 아픔을 수면위로 드러내 교훈으로 삼고, 인권과 평화 교육을 강화하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학생들은 바다건너 작은 섬나라 대만에서 다시한번 우리의 인권이 또 인권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기는 기회가 됐을 것이다.

우리 일행은 대만의 초대 총통이자 대만 아픈 역사의 주인공인 장개석을 기리는 중정기념당을 찾았다. 높이 솟은 뽀족한 팔각형 모양의 지붕, 그 아래 자리잡고 있는 장개석의 초대형 동상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시실에는 장개석 생전 사용했던 물품과 서적 등 유품이 전시돼 있었고 동상 아래서 매시간 열리는 위병교대식은 절도있고 엄숙했다. 대만의 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둘러보아야 할 명소로 알려진 곳이었지만 앞의 이야기와 연결돼 감동이 덜했다.

강민중기자 jung@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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