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 성찰이 필요하다’
'한국 민주주의, 성찰이 필요하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01.3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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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객원논설위원·진주교대교수)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논쟁적인 개념이다. 대표적인 것이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이다. 이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적절성 조건들이다. 적절성 조건들은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적실성과 인민주권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적 정당성을 적절히 수용하는 문제들이다. 이러한 논의와 관련하여 민심이 곧 민주주의라는 슬로건아래 현실 정치의 중요한 덕목 하나로 국민들로부터 지지(支持)받을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그 조건의 장(場)은 현실이고, 덕목은 현실을 어떻게 조직화 혹은 재구성하느냐의 문제다. 현실 재구성과 관련하여 대개 좌파는 포퓰리즘, 우파는 국가주의를 지향한다.

사회를 선과 악으로 나누어 증오와 분열, 반목과 대립을 부각시키는 과정에 대중을 끌어들이는 선동의 동원 정치를 공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이념적으로는 서로 양극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좌파는 과거 청산과 기득권 세력 타도를 우선적 과제로 삼고, 우파는 이민자나 소수민족 등 정치적 희생양을 찾아 정치운영의 전면에 내세운다. 그런데 역사는 전자의 득세는 후자의 책임이고, 후자의 득세는 전자의 책임임을 인과(因果)의 사실로서 말해주고 있으나, 좌파적 포퓰리즘이나 우파적 국가주의가 성공한 역사적 사례는 없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수정권에 대한 실망과 분노의 촛불민심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과 보편적 복지와 같은 친서민적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런데 그 정책의 면면을 받혀주는 이론적 적실성은 주류의 경제 이론에서 벗어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아직 확실한 반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우리의 현실에서 개선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당위의 문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남미에서 베네수엘라,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에 좌파 정부가 들어섰다. 이들 좌파 정부는 복지의 대폭 확대와 친노동자, 서민 정책을 폈지만 그 의도와 달리 결과는 참혹했다. 문제는 남미국가 정책과 거의 같은 결에 위치하는 문재인 정부의 일련의 정책들이 시장원리와 어떻게 접점을 찾느냐 하는 것이다. 게다가 전 방위적인 적폐청산 드라이브 과정에 우리 정치가 지나친 사법화(司法化)되고 있는 현실은 한국 사회를 더욱 분열되게 하고, 증오와 대립을 확대시키고 있다. 집권의 많은 시간을 과거와 싸우면 무능 좌파 오명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도리어 집권 여당의 정국 장악 능력을 약하게 만들 뿐이다. 더욱더 고단위 시혜의 정책이 있어야만 국민이 만족하기 때문이다.

정치를 투전판으로, 이해충돌의 문제를 혼돈케 했던 손혜원 의원 사건 일련의 과정은 한국 민주주의 자성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서구에서 투표권 확대 과정은 광범위한 사회집단과 계급의 정치적 참여의 확대를 동반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1948년 5.10 선거를 통해 보통선거권이 제도화되었지만 서구에서와 같은 어떤 실질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정당체제가 광범위한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사회의 계층 구조와 기능적 이익을 반영한 것도 아니었고, 대중정당으로 발전하지도 않았다. 민주주의 내면화의 시간이 체득되지 못했고, 시민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민주주의를 도입했다는 의미다. 바로 이 점이 한국 민주주의 발목잡고 있다.

한국 사회는 집단 간 갈등이 위험 수위에 올랐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미비하고 사회적 합의는 결여돼 있다. 집권 3년차 정부에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 사회적 합의도출과 관련하여 일정 부분 역할을 대신했던 시민사회 역시 정치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 역설적이게도 민주주의를 외치던 진보에 의해 한국 민주주의의 운명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이재현(객원논설위원·진주교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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