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담다] 굴캐는 진설윤·정차숙 부부
[일상을 담다] 굴캐는 진설윤·정차숙 부부
  • 박도준
  • 승인 2019.02.10 1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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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먹고 달빛 먹고 자란 굴
남편은 밀물 때 배 타고 채취
아내는 쪼개기로 일일이 까내면
탱글탱글한 굴알에 웃음꽃 활짝

‘아는 사람만 찾는다’는 서포굴의 수확이 한창이다. 작지만 쫄깃쫄깃하고 탱글탱글한 서포굴은 향도 진하다. 밀물과 썰물의 차로 바닷속에 잠겼다 나왔다 하며 자연산처럼 수하식으로 양식하기 때문에 낮에는 햇빛 먹고 밤에는 달빛 먹고 자라 비리지도 않다. 다맥마을 앞바다에서 자란 굴은 물 속에 있는 수중식 굴보다 작고 회색빛이 감돈다. 밀물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굴줄이 얼굴을 내밀 때를 틈 타 굴줄을 낮으로 베어 박스에 담아 굴막으로 옮겨 굴까기작업을 한다. 어업 40년 경력의 진설윤(64·사천시 서포면 다맥마을)씨의 서포굴 채취과정과 부인 정차숙씨(63)의 굴까기 작업을 통해 서포굴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들을 담아본다.
 
 

지난달 25일 오후 5시가 안되어 다맥에 도착했다. 바닷물이 빠지는 밀물이 한창 진행되는 때를 타 다맥마을 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굴을 채취하려 나갔다. 손에 닿을 듯한 비토섬과 마을 선착장을 뒤로 하고 개섬과 소개섬 사이로, 굴양식장 사이로 세찬 바람을 가르며 0.65t 선외기가 물보라를 토해냈다. 섬을 품고 있는 바다 위에는 굴대들이 도열해 있는 군인들처럼 진을 치고 있었다. 굴양식장에는 굴줄에 매달려 있는 굴들이 석양의 햇빛을 받으려 거뭇거뭇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낮에는 햇빛를 살라먹고 성장한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개섬과 도보치섬 사이 진 씨의 양식장에 도착하니 서산의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진 씨는 이곳에서 바닷속의 걸대줄을 걷어 올려 배에 설치된 쇠로 만든 Y자형 걸고리에 걸어놓고 굴이 매달려 있는 가는 줄을 몇 가닥씩 잘라 콘테이너박스에 담기 시작했다. 파래들이 감싸고 있는 줄을 걷어올리며 “서포굴은 하지무렵 굴 종패를 부착시켜 이식을 거쳐 12월부터 3~4월까지 수확한다”면서 “다맥마을엔 수중식 굴을 키우지도 팔지도 않는다. 먹는 것은 괜찮지만 팔다간 마을에서 쫓겨난다”고 했다. 서포굴의 명성을 마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마련한 자치규약 같은 불문율이란다.
 
‘아는 사람만 찾는다’는 서포굴의 수확이 한창이다. 작지만 쫄깃쫄깃하고 탱글탱글한 서포굴은 수하식으로 양식하기 때문에 낮에는 햇빛 먹고 밤에는 달빛 먹고 자라 비리지도 않다. 다맥마을 앞바다에서 자연적인 조건하에서 수하식으로 키운 굴을 진설윤(64·사천시 서포면 다맥마을)씨가 굴을 채취하고 있다.


옛날 서포굴은 투석식으로 조수 간만의 차가 큰 바다에 돌을 던져 놓은 후, 돌에서 자란 굴을 채취하는 전통적인 양식이었으나, 소나무와 대나무를 기둥으로 박아 양식하기 시작했고, 최근엔 파이프를 박아 줄을 매달고 그 줄에 가는 줄을 달아 굴종패를 넣어 키운단다. 이를 걸대식이라고 한다.

어느 줄에는 굴들이 큼직한 굴이 주렁주렁 달렸는데 어느 줄에는 굴이 듬성듬성 붙어 있었다. 그 이유를 묻자 종패를 이식한 여름철에 수온이 높아 굴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떨어져 나갔거나 성장을 멈추고 폐사한 때문이란다. 지구온난화가 다맥마을의 굴 생산에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이날도 몹시 추웠다.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손이 얼얼해지고 온몸이 자동으로 덜덜 떨리기 시작했지만 진 씨는 추위에 이력이 난 듯 아무렇지 않게 굴을 거두고 있었다. 석양을 후광처럼 두르고 작업을 하던 그가 “날씨가 추울 때는 굴줄을 거두자 마자 바닷물이 얼어붙는 경우도 자주 있다”며 “오늘도 바람이 많이 불고 몹시 추운 날”이라고 말했다. 손 끝으로 저 멀리를 가르키며 “저기도 양식장이 있는데 기자 양반 추울까봐 멀리 안 나갔다”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콘테이너박스 8개를 채우고 선착장으로 돌아와 굴막으로 옮겼다. 오늘 수확한 20여㎏의 굴 8박스를 까면 35㎏정도를 얻는단다. 택배 1㎏에 1만3000원, 경매 1만원 안팎을 받지만 수중식보다 30%가량 비싸게 거래된다고 했다.

굴을 싣고 가는 길에 진 씨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사천 서포굴 까는 작업은 대규모 기업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소규모 굴막을 짓고 가족끼리 또는 마을 아지매 한 두명이 붙어 굴을 깐다. 몇년 전까지 수확량이 많을 때는 5~10명이 모여 굴을 깠는데 지금은 수확량도 줄고 굴을 까는 어르신들이 대부분 돌아가셔서 일손도 엄청 모자란다. 특히 물때에 따라 굴을 채취하는 관계로 밤샘작업을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진설윤(64·사천시 서포면 다맥마을)씨가 채취해 배에 싣고 마을로 돌아오고 있다.


비닐로 지은 굴막 입구에는 ‘자연산 굴 판매합니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굴막에 들어가자 5평 남짓한 공간에서 한 아지매는 바닥에 앉은 채 굴을 까고 있었고, 진 씨의 부인 정 씨는 의자에 앉아 굴까는 데 여념이 없었다.

굴은 생물이기 때문에 기계로 껍질을 깔 수 없어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까야 한다. 상처가 나면 상품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ㄷ’자형 굴 까는 기구인 쪼개기는 이 마을에서 사용하는 ‘쪼세’의 다른 말이다.

따옥의 머리처럼 생긴 쪼개기 머리부분으로 굴의 입쪽을 두서너번 찍어 입을 벌리고 벌어진 틈으로 쪼개기의 아래 부분으로 속살을 살짝 긁어 고무대야 속으로 정확하게 튕겨 넣는다. 숙련된 달인들이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잘못 찍어면 손가락을 찍는 순간도 있단다. 긁어 튕길 때에도 힘 조절이 필요하다. 생굴은 생물인 관계로 너무 힘을 주면 굴알에 상처를 입기 때문에 고도의 숙련된 솜씨도 뒤따라야 한다.

30여년의 경력을 가진 진 씨의 부인 정 씨에게 서포굴의 장점을 묻자 “서포굴은 통영산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속살이 단단하고 향이 진하고 비린내가 없는 것이 특징”이라며 서포굴 자랑이 끝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굴을 쪼개고 속살을 튕겨 대야에 넣고 있었다.

 
다맥마을에서 자연적인 조건하에서 수하식으로 키운 굴을 정 씨(63·사천시 서포면 다맥마을)씨가 굴막에서 굴까는 작업을 하고 있다.


판로는 걱정이 없다고 했다. 부산 서울 제주도에서도 주문이 들어와 택배로 부치기도 하고, 매일 새벽에 경매가격이 결정되고 오후 2~3시 수협에서 나와 물량을 수거해 간다고 말했다.

정 씨는 서포굴이 8~12시간 바다속에, 나머지 시간은 바다 밖에서 있어 통영굴보다 성장속도가 2~3배 느리고, 크기도 2~3배 작다고 귀뜸했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굴을 까는 아지매에게 아픈 데는 없냐는 질문에 “무릎, 허리, 목 등 안 아픈 곳이 없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허리가 굽은 어르신은 “우리 마을 나이 든 늙은이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 허리가 굽었다”고 말했다.

진 씨는 “쌔빠지게 굴 까서 번돈들은 병원에 다 갖다 바친다는 웃지 못할 우스개 소리가 있는데 진짜다”고 거들었다.

진 씨는 그렇지만 열심히 일하면 일년에 연간 3000만원의 수입을 올리고 많게는 5000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집도 있다며 기자생활 끝나면 일하러 오라는 농담을 던졌다.

정 씨는 교회에 가야 한다면 서둘러 청소를 하고, 진 씨는 채취해온 굴들이 얼지 않도록 박스에 이불을 덮어주면서 부산에서 주문이 들어왔다며 택배 물량을 싣고 떠났다.

까 놓은 알굴이 이것 밖에 없다며 한 홉쯤 되는 굴 봉지를 내 손에 쥐어주고는 내일 새벽 5시쯤 굴 채취하러 가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바람보다 앞서 사라졌다.

박도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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