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 the peole, for the peole, by the peole
Of the peole, for the peole, by the peole
  • 경남일보
  • 승인 2019.02.1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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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1620년 9월, 102명의 영국 청교도들은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한다. 당시 영국은 왕실과 카도릭의 종교권력으로 제도돼던 어두운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48년후, 영국인은 명예혁명으로 종교적 자유를 찾았고 권리장전으로 국민이 주권을 갖는 민주주의의 첫 걸음을 내디디게 된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노예해방과 청교도정신이 만들어 낸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은 바 크다 할 것이다. 그 완성은 링컨 대통령이 케티스버그 군인묘지 헌정식에서 행한 연설이었다고 할 것이다. 국민의( of the people),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정부는 망하지 않는다는 연설의 끝부분은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가장 기본적 잣대가 되었다. 오늘날도 미국의 모든 정책은 과연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것인가로 시작된다.

오늘날 우리의 정치를 보면 이런 잣대에 부합하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탈원전 정책이 그러하고 소득주도성장이 그러하고 최저임금과 근로시간단축이 그러하다. 10개의 경제지표중 8개가 하강추세로 경고음을 내고 있으며 공장에는 재고가 쌓여 구조조정을 들먹이고 있는데도 정부는 “양호하다”고만 하니 체감경제와는 너무 괴리가 크다. 내부자고발은 고발내용의 규명보다는 고발자의 위법성에 집중돼 진실이 무엇인지 의구심만 증폭되고 있다 내로남불은 정권과 집권당이 다반사로 행하는 행태로 회자되고 국민의 소리에 귀기우리지 않고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다는 도무지 불통이라는 비아냥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신념(ism)에만 매몰되어 관철하려는 오만에 가득찬 정권이라는 비난의 소리도 적지 않다. .지금 쯤은 한번 쯤 뒤돌아 보고 성과를 냉정하게 분석해 볼 시점이다. 집권3년차이면 모든 정책이 탄력을 받아 가시적인 성과가 나와야 하는데도 불안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즈음이면 나타나는 것이 공무원들이 슬슬 눈치를 보며 납작 엎드려 눈알만 굴리기 시작한다. 새로운 잠룡들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줄서기가 시작되고 여당내에서도 비주류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진다. 이합진산의 전조가 나타나는 것이다. 폴리페서들이 모습을 드러내 민심이 어느쪽으로 기우는지 살피는 것이다. 권력의 장악력이 문제가 생기면서 내부자고발이 늘어나고 부패한 곳이 드러나 청문회와 특검을 요구하는 야당의 공세가 거세진다. 민주화이후 역대정권이 겪어온 우리의 정치사가 그렇다. 어느 정권도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은 정권이 없다. 노태우정권은 결국 야당과의 합당으로 위기를 모면했고 노무현대통령은 연합정부구성으로 위기를 이겨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권력무상은 서울의 유명음식점에 걸려있는 저명인사들의 사진이나 기념사인에서 잘 드러난다고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가장 잘보이는 곳에 있던 인사의 기념물이 온네간데 없고 갑자기 특정인이 권력자의 주변이 배치되면 실세로 보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르다’가 ‘우리도 별 수 없다’로 바뀌는 것이다.

국민들은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이 정권의 성공을 기대하고 있다. 스스로 선택했고 민의 소리를 가장 잘 들을 것으로 기대했다. 촛불혁명의 준엄한 요구를 과거 어느 정권보다 잘 들어 줄 것으로 기대했다. 지금은 정부가 그런 기대에 부응할 때이다. 냉철한 시각으로 지난 2년을 뒤돌아 보고 궤도를 수정할 것은 수정해야 한다.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인지 너무 집권세력의 이즘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광범위한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설사 그 정책이 성공의 길이 험난하더라도 of와 for, by에 부합된다면 흔들림이 없이 전진해야 하지만 다수의 국민이 아니라고 하면 바꾸는 것이 마땅하다. 그 중심에 소득주도성장과 노동정책, 원자력정책이 있다. 집권 후반기, 정권이 동력을 잃으면 끝없는 정쟁과 봇물같이 터져 나오는 각종 요구로 혼란을 겪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인류가 선택한 가장 완벽한 통치수단인 민주주의는 그 가는 길이 느리더라도 그 중심에 민이 있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된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그렇게 성장해 왔고 지금도 그 길을 걷고 있다.
 
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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