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이 오는 길목에서
  • 경남일보
  • 승인 2019.02.1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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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주 (초록우산 후원회 사무총장)
노병주
노병주

포롱포롱 작은새 한 마리가 베란다 창가를 기웃거리며 날고 있다. 입춘을 갓지난 찬바람이 예사롭지 않은데 어디서 날아왔을까? 순간 반갑기도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아직은 추울텐데? 아직은 땅속 애벌레들이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았을텐데…’ 굳게 닫힌 통유리 표면에 가녀린 두다리를 곧추 세우며 앉으려다 결국은 어디론가 휙~날아가 버린다. 겨울새인가? 그렇다고 제비가 벌써 날아올 리도 없고. 번쩍 든 반가운 마음이 걱정으로 변하는 순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베란다로 나간다. 무엇인가 눈이 호강하고싶은 염치없는 기대감을 안고서 말이다.

겨울의 베란다 화단은 삭막하기 그지없다.초록빛을 잃고 힘든 겨울을 나느라 바짝 마른 몸을 뒤틀며 떨어진 나뭇잎들이 시위하듯 어지럽게 널부러져 누워있다.무관심한 주인장의 게으름으로 지독한 갈증에 시달리다 말라버린 나무들이며, 타는 목마름으로 바스락 소리를 내는 화초들의 원망소리가 아우성처럼 들리는 듯 하다.자연의 섭리와 절기를 핑계삼아 방치하다시피 내던지고 있었던 미안한 마음에 물뿌리개를 손에 들고 수도꼭지를 튼다. 마른잎들 위로 분수처럼 쏟아지는 물줄기를 따라 흙내음을 느끼며 구석구석 화분 사이를 훑고 지나간다.

계절의 가고 옴이 가장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이 곳! 아니나 다를까? 한겨우내 그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초록빛을 간직하며 가녀린 몸을 지탱하고 있던 석곡에 진보라빛 꽃망울이 조랑조랑 달려 있다. 성질 급한 자란이며 바위취, 고깔제비꽃은 봄마중을 나온 지 벌써 오래된 듯 하다. 햇살먹은 비비추 새싹들도 기지개를 켜며 들썩이고 있다. 순간 무척 반갑고 놀라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소리없고 바람없는 이 곳에서 시나브로 어린 생명들이 잠자고 눈뜨며 자라고 있었던 것을 왜 잊고 있었던 걸까? 우선 보기에 꽃을 피우지 않고 잎이 떨어져 볼품없는 행색으로 변해 버렸다고 저멀리 관심 밖의 세상으로 몰아버린 용렬함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얼른 팔을 걷어부치고 마른잎을 떼어내며 흙을 북돋아준다.조금은 내마음에 위로가 되는듯 하다.작년 내내 더할 나위없이 큰기쁨과 즐거움을 안겨다준 나의 사랑하는 화초들.이제 다시는 눈밖으로 내쫓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닫힌 창문을 열어 젖혔다. 이제 곧 봄이오는 길목을 마주하게 되면 그동안 던져 놓았던 빈화분에 다시 흙을 채우고 반려식물을 심을 것이다. 작은 풀꽃 작은 묘목 한그루일지라도 이것은 내 삶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올해는 이 작은 반려식물들이 평온하고 행복한 꿈의 신세계로 나를 인도하리라 확신한다.


노병주 (초록우산 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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