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독립선언서’ 서명 이병홍 지사 무덤 발굴
하동 ‘독립선언서’ 서명 이병홍 지사 무덤 발굴
  • 최두열
  • 승인 2019.02.1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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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상해 임시정부 김홍권 선생, 한글 헌시 지어 비 건립
하동군·경남독립운동연구소·합천이씨 종중과 서훈 추진
이병홍 지사 이름이 ‘대한독립선언서’에 기록돼 있다./사진제공=하동군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저버린 님이여, 너의 뼈는 썩을지라도 혼은 꺼지지 않을지니”

1919년 하동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한 후 행적을 알 수 없었던 하동출신 독립운동가 죽헌(竹軒) 이병홍(李炳鴻·1896∼1919·양보면 박달리) 지사가 3·1만세운동 후 6개월 만에 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은 100년 전 세운 무덤 묘비를 통해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가 밝혀냈다. 군과 연구소는 이를 바탕으로 이병홍 지사에 대한 정부 서훈을 추진키로 했다.

비문을 분석한 재야사학자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은 이 비는 1920년 독립운동가 김홍권(1892∼1937·건국훈장·양보면) 선생이 비문을 짓고 합천이씨 종중과 함께 세운 것 이라고 밝혔다.

이병홍 지사 묘비 발굴은 지난해 3월부터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군내 미발굴·미포상 독립운동가 찾기 전수조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양보면 거주 이현철(56·양보합동양조장 대표)씨의 제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정 소장은 하동군 진교면 고외 마안곡에서 찾은 묘소가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이병홍 지사임을 밝혀냈다.

정재상 소장은 “이 지사가 1919년 음력 윤 7월에 세상을 떠나자 벗이자 동지였던 김홍권(당시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이 1920년 3월 순수 한글로 비문을 짓고 세운 것이다”며 “비에는 본관·출생·사망일자·건립연도·비문 작성자 등이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비문을 작성한 김홍권 선생은 3·1운동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인물로 이병홍 지사와는 진주공립농업학교(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선후배 관계이며, 김홍권이 2회 졸업생으로 2년 선배다”고 설명했다.

이병홍 지사 묘소(하동군 진교면 고외 마안곡 소재)/사진제공=하동군
이병홍 지사 묘비는 하동군 진교면 고외 마안곡에 있다./사진제공=하동군

그러면서 “처가가 합천 이씨로 이병홍과는 인척지간이다. 김홍권은 이병홍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곧바로 문상을 하지 못한 것은 일제 감시 때문으로 생각된다”며 “벗이 세상을 떠난지 8개월 후에 찾아와 비를 세우고 애도한 것으로 본인다”고 덧붙였다.

묘비의 앞면에는 ‘志士陜川李君炳鴻之墓(지사합천이군병홍지묘)’라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순수 한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저버린 님이여, 너의 뼈는 썩을지라도 혼은 꺼지지 않을지니∼’라는 내용과 벗 金弘權(김홍권)이라 적혀있다.

그리고 양 측면에는 ‘庚申 三月(경신 3월 (1920))과 光武元年 丙申(광무원년 병신(1896) 八月 二十四日 生(8월 24일 생) 己未 閏 七月 十三日 卒(기미(1919년) 윤 7월 13일 졸) 年 二十四(년 24)’이라 적혀있다.

 

한편 이 지사는 1915년 진주공립농업학교 3년 졸업 후 하동읍내에서 대서소(代書所)를 운영했다.


그러던 중 1919년 3월 박치화(건국훈장), 이범호(대통령표창), 정낙영(대통령표창) 등 12명과 자신이 운영하던 대서소에서 은밀히 모여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해 3월 18일 하동장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군중 1500여명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후 주동자로 몰린 박치화는 일본경찰에 연행돼 진주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았다. 사무실을 독립운동 근거지로 이용한 이병홍 지사는 징역 6개월 형을 받았다.

박치화는 항소했으나 이병홍은 항소를 포기하고 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하지만 감옥에서 얻은 병으로 출옥 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24세였다.

이 지사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서명하고 남긴 하동 ‘대한독립선언서’는 2015년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기미독립선언서와 함께 국가지정 기록물 제12호로 등록돼 독립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한편 묘소 위치에 관해 제보한 종중 후손 이현철 씨는 “집안 어른(이병홍)께서 3·1운동을 하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부친으로부터 전해 들었으나 그동안 관심을 갖지 못해 죄스럽다”며 “늦었지만 목숨 바친 선대 할아버지에 대한 정부의 온당한 평가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상기 군수는 “하동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애국지사 12인의 행적이 한 분 한 분 밝혀지고 있어 3·1운동 100주년의 의미를 더욱 뜻있게 하고 있다”며 “하동군이 추진하는 미발굴 독립운동가 찾기 전수조사를 통해 독립운동가를 한분이라도 더 찾는데 경남독립운동연구소와 함께 힘쓰겠다”고 말했다.

정재상 소장은 “독립의 꿈을 이루지 못한 이병홍 선생의 짧은 생을, 벗이자 동지인 김홍권 선생이 한편의 시로 위로했다”며 “이 비문은 순수 한글로 지어 민족독립의지를 강하게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최두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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