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26]렘브란트를 위하여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26]렘브란트를 위하여
  • 경남일보
  • 승인 2019.02.1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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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서거 350주기 기념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1606-1669)의 서거 35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네덜란드 방방곡곡에서 렘브란트 현수막을 내거는 통에 책장에 있던 그의 전기와 작품 도록을 다시 한 번 들춰보게 된다. 자국 출신인데다 평생을 오직 네덜란드에서만 작품 활동을 했던 화가이다 보니 네덜란드 사람들이 렘브란트에 내거는 자부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그들이 살짝 부러워진다.

오늘날 렘브란트의 대표작으로 손 꼽히고 있는 작품만 보더라도 대충 짐작이 가겠지만, 동시대 화가 이자 이웃나라 벨기에를 대표하는 루벤스(Peter Paul Rubens,1577-1640)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렘브란트가 초상화에 얼마나 큰 애착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신화나 성경을 소재로 한 작품을 주로 그렸던 루벤스와는 달리, 자화상을 포함해 작품의 2/3가 모두 초상화인 것을 감안하면 렘브란트는 당시 네덜란드에서 이름 꽤나 날렸던 초상화 전문 화가였음이 틀림없다. 렘브란트는 평생 동안 40여점의 유화 작품을 포함해 에칭, 드로잉 등 약 100여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그가 동경했던 루벤스가 7점의 자화상을 남긴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렘브란트는 왜 이토록 자신의 얼굴 그리기에 매료 되었을까? 그에게 한 수 배우려고 몰려든 제자들에게도 자신의 자화상을 똑같이 따라 그리도록 하며 그림을 가르쳤던 그. 어쩌면 우리는 렘브란트가 남긴 자화상에서 40여년에 걸친 화가의 인생과 ‘인간’ 렘브란트를 찾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화상을 통해 그와 만나보자.

◇20대 실험 정신이 가득한 젊은 화가의 도전

어디선가 들어오는 빛 때문에 소년 렘브란트의 한쪽 볼은 선명하지만 그림자에 의해 가려진 두 눈은 금방 알아보기 쉽지 않다. 그는 빛과 그림자를 과감히 표현했고,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붓 끝 부분을 사용해 곱슬머리를 강조했다. 렘브란트의 이러한 시도는 동시대 화가들의 기법과는 확연히 두드러졌고, 이후로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탐색해 나가기 시작했다. 1628년 작 / 패널에 유채 / 22.6cm x 18.7cm 암스테르담 국립 박물관 소장.

 
암스테르담 국립 박물관 소장. 1628년 작 / 패널에 유채 / 22.6cm x 18.7cm


암스테르담으로 거처를 옮겨 처음 완성한 이 자화상에서는 렘브란트가 화가라는 단서는 찾을 수 없지만 그가 젊은 나이에 크게 성공했다는 것을 옷차림을 통해 알 수 있다. 당시 검정색 벨벳 망토는 값비싸고 귀한 옷이었기에 부유층들만 입을 수 있었는데 렘브란트는 이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던 모양인지 금장 단추 장식까지 더해 화려함을 보탰다. 또한 1600년대 유럽에서 유행했던 흰색 러프는 제조 공정과 관리가 매우 까다로워 이것 역시 부유층들만 착용 할 수 있었던 장식 이었다. 렘브란트는 자신의 성공을 자축이라도 하듯 거울에 비친 자신의 당당한 모습을 거침없이 캔버스에 담았다. 1632 년 작/ 패널에 유채 / 9.1 cm x 7.5 cm / 글래스고 박물관 소장



 
1632 년 작/ 패널에 유채 / 9.1 cm x 7.5 cm / 글래스고 박물관 소장


◇30대 “내가 바로 그 유명한 렘브란트”

부와 명예, 사랑까지 모두 거머쥔 행운의 사나이. 초상화가로써의 성공과 함께 사스키아와의 결혼으로 더없는 전성기를 누리던 때에 완성된 초상화로 왼쪽의 여자는 사랑스러운 아내를 오른쪽의 웃음 가득한 남자는 자신으로 표현했다.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당시 주제로 인기 있었던 신약성서 이야기 중 하나로 표현했는데, 한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자신의 재산을 객지에서 모두 탕진하고 힘든 생활을 하다가 결국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내용으로,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며 사랑으로 보듬어 준다. 렘브란트는 자신을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아들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후 1669년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또 다른 작품에서도 표현했다. 1637년 작 /캔버스에 유채/161 cm × 131 cm 드레스덴 국립 미술관 소장



 
1637년 작 /캔버스에 유채/161 cm × 131 cm 드레스덴 국립 미술관 소장


◇40대 얼굴에 드리운 화가의 근심

40여개의 렘브란트 자화상 중 이 작품은 화가의 표정이나 옷차림에서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 특히 몸을 한쪽으로 틀어 측면만을 부각 시키던 종전의 포즈와는 달리 거의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이 그림에는 얼굴과 상반신 전체가 표현 되어 있다. 작품이 그려진 시기는 렘브란트의 경제적 위기가 시작 된 즈음으로 그의 부와 명성이 예전 같지 않음을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이 짐작케 만든다. 자화상을 좀처럼 그리지 않다가 7년여 만에 그린 이 작품에서는 전성기 시절에 그렸던 화려한 옷과 장신구등은 온데 간데 없고, 작업복 같은 허름한 옷이 그의 상황을 대변해 주고 있다. 1652 년 작 / 캔버스에 유채 / 112.1 cm × 81 cm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1652 년 작 / 캔버스에 유채 / 112.1 cm × 81 cm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 50대 세월의 느끼지는 화가의 눈

54세에 그린 이 자화상은 렘브란트가 이제 막 파산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산과 작품들이 모두 경매에 넘어간 시기에 그려졌다.

그는 그저 솔직하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담은 듯 하다. 주름살과 처진 살 등은 얼마든지 마음껏 손 볼 수 있었을 테지만, 그는 나이든 자신의 모습에 체념하는 듯 하면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 던 것 같다. 어두운 색과 얼굴 한쪽에 드리운 그림자 때문에 세월의 무상함이 그대로 느껴지지만 화가의 눈을 보라. 어쩐지 눈빛만큼은 젊은 열기가 그대로 살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칠하다 못해 툭툭 찍어 바른 물감과 같이 그의 지나간 세월도 함께 묻어나 있다. 1660년 작 / 캔버스에 유채/ 80.3 cm × 67.3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1660년 작 / 캔버스에 유채/ 80.3 cm × 67.3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의 마지막 자화상이라고 여겨지는 이 작품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던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듯하다. 초기 작품들에 비하면 질감이 느껴지는 두터운 표현이 돋보이고, 어두운 분위기는 마치 삶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예견 하는 듯 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림에서 느껴지는 화가의 중후함과 자신감은 그림을 보는 이로 하여금 ‘과연 렘브란트!’ 를 되뇌이게 만든다.

네덜란드 밖의 세계를 경험해 보지 못한 렘브란트에게 작은 위안이 될 진 모르겠지만,그가 남긴 작품은 오늘날 전 세계 곳곳에서 관람객과 마주하고 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어가고 죽는 것은 자연의 섭리지만, 세월을 흘려보내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그였기에, 또한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이기에 그의 마지막 자화상을 바라보며 따뜻한 위로와 존경의 마음을 함께 보낸다. 1669년 작/캔버스에 유채 /86 cm × 70.5 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1669년 작/캔버스에 유채 /86 cm × 70.5 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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