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하나 숨겨두고 살면 대접받는다?
칼 하나 숨겨두고 살면 대접받는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02.2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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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재 객원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회장
정승재

다음 주 베트남에서 북미 2차 정상회담이 열린다. ‘한반도비핵화’의 실질적 개가가 있을지, 잘게 쪼개진 프로세스 한토막으로 ‘역시나’하는 실망감을 담을지 관심이 쏠린다. 북한은 지난 30년 이상 갖은 위장전술 끝에 핵무기를 보유했다. 우리는 말 할 것도 없고, 초강국 미국을 압박해 왔다. 북한의 ‘핵협상’은 가깝게 미국을 주축으로 한 UN의 대북제재 완화 내지는 파기, 멀게는 체제보장과 천문학적 경제원조를 따 내는게 본질이다. 본토를 사정거리에 두고, 외교와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을 가만 놔 둘 수 없는 상황의 미국은 CVID,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목표로 한다.


핵을 가진 북한 예우는 세상이 놀랄 만큼 모두가 파격이다. 우리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담긴 ‘한반도비핵화’가 공표된 이래, 북한의 도발로 가슴을 쓸어내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우리 돈 수 십 억불이 투입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이 북한의 일방적 통보로 중단과 재개를 거듭했다. 사실상 그 시설물들은 북한 소유가 되었다. 수십 차례 핵실험을 감행했고, 평화가 깃든 연평도 민가 포격, 천안함을 피격하여 46명의 장정의 목숨을 날리기도 했다. 세계굴지 우리 기업인은 실무자급 당국자로부터 이른바 ‘냉면 목구멍’이라는 핀잔을 듣는 수모도 당했다. 국민은 ‘김정은 답방’을 고대하며 수개월 동안 마음조린 대통령의 안스러움을 비평 없이 목도 할 수밖에 없었다.

만행으로 읽혀질 인권유린, 굶어 죽는 사람이 넘치는 최악의 생활수준을 보이는 북한, 유일 강대국을 자처하는 미국은 이런 형편의 체제 지도자의 심기를 건드릴까 노심초사다. 회담개최지도 경호가 용이한 다낭에서 북한의 요구에 따라 하노이로 정해졌다. GNP기준, 세계 최빈국 정상을 ‘몸 달아’ 만나는 경우도 드물지만 개최장소가 상대에 밀려 양보한 전례는 없다.

미국에 견제구를 날리는 중국도 북한대우에 소홀함이 없다. 최고지도자 시진핑은 부친 사망으로 권력을 잡은 김정은을 5년 이상 만나주지 않다가, ‘핵’ 등장이후 돌변했다. ‘핵거래’ 이후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에게 그는 ‘자주 만나자’는 콜을 연발했다. 중국공산당내 권력서열이 손가락으로 꼽혀지는 세도가들을 일거에 불러들여 김정은에게 인사시키는 등 최고급 예우를 다한다. 아시아 맹주였던 일본도 핵을 가진 북한에 굴신한다. ‘일본패싱’을 염려한 아베 수상도 얼마전 의회 연설을 통해, 북한과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정상화를 목표로 하겠다는 다짐을 토로했다.

핵보유 대가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 핵을 수단화하지 않았다면 그런 역학이 가능했을까. 북한의 핵은 단 한번 작동으로 우리를 예외로 하지 않는 수 백 만명의 살상이 가능한 무기다. 한 집안에, 한 조직에, 한 사회에 상대의 목숨을 겨눌 수 있는 칼, 비수(匕首)를 감추고 협박하는 연상이 자연스럽다. 칼 버릴테니, 돈 내 놓고 간섭말라란 요구 말이다. 평안과 화목이 깃든 집안, 세상에 칼든 사람의 집요를 저항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지 진한 회의가 생긴다.

못된 심성에 불순한 의지로 칼을 숨기고 살면 대접받는다는 사례, 그 모델이 생길까 두렵다. 개인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생존’이 과정 모두를 정당화시킬 수 없다. 생명을 위해(危害)하는 흉기 앞에 무조건적 굴신과 보상이 절대선일까. ‘핵폐기’면 전대미문의 인권탄압 악행과 지구상 유일의 권력세습 해악은 넘어가도 될 사안인가. 오직 권력자만 자유가 보장된 독재체제의 주민안위는 쓸모없는 일인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그들의 국명(國名)에 들어간 민주주의는 그러한 야만을 허용하지 않는다. 편향 없는 관찰, 특별히 북한의 진정성을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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