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마산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일제시대 기억
[경일포럼]마산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일제시대 기억
  • 경남일보
  • 승인 2019.02.2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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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운영위원(마산역사문화보전회)
올해는 3·1운동 100주년 되는 해이다. 마산지역 문화예술인 중에서 자신의 일제시대 경험을 자세히 기억하는 분이 있다. 그중에서도 수필가 서인숙은 드물게 솔직하다. 그의 수필 ‘유년의 그 문양’에서 아픈 기억을 고백하였다. 서인숙은 일본어 글솜씨도 맵차서 일본인 여자 담임 선생님의 사랑을 한껏 받았다. 급장으로서도 모범이었으며 강고한 내선일체의 기치마저 아름다운 마음을 담아 아침이면 교장실에서 마이크를 통해 각 교실의 학생들에게 낭송하였다. 글짓기엔 언제나 일등을 차지하였고 일본말을 잘한다는 칭찬으로 상을 수없이 받았다. 수필 ‘애국자’에서는 나이 열네 살인 해방 후 마산공립보통학교 5학년 때에 친일파라는 누명을 받고 학급 친구들에게 끌려가 산기슭의 구석진 곳에서 수십 명의 친구들에게 이리 떠밀리고 저리 맞아서 쓰러져 울던, 해지는 산기슭의 적막을 기록하였으며 이 때, 산기슭에서 본 붉디붉은 노을은 시 ‘노을’이 되었다고 한다. 이 아픔은 도저히 본인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조건인 일제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수필가 문한규는 그의 수필 ‘어떤 5월’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조선말을 하면 야단을 치고 벌을 주던 선생님이 버젓이 우리말로 이제 일본이 망하고 조선은 독립이 되었으니 집에 가서 방학이 끝나면 학교 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일본 선생 보다 더 전쟁에 이긴다고 열을 올리고, 조선말 한다고 못살게 굴던 그 선생님의 갑작스런 변신에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학교 선생님은 생계형 친일을 하였던 것이다. 문한규는 어느 추운 겨울날 ‘공회당에서 전시된 격추된 B-29 폭격기의 뒷바퀴를 봤을 때, 그것이 내 키 보다 더 크다는 것에 놀랐고 그런 비행기에 대항해서 일본이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고 한다. 해방이 되어서는 ‘그때까지 우리라고 믿고 있었던 일본이 져서 분하다거나 안된다는 생각도 전연 없었다’고 한다.

무용가 이필이는 일제 말기 3년간 다녔던 초등학교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녀의 수필 ‘내 고향은 마산’에서 자신의 이름은 ‘구니모도 히주이’였으며 우에하라라는 여자 담임 선생님을 마냥 좋아했다고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사실 착한 학생이 담임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학교에 가면 항상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에는 겨울이면 솔방울 주우러 산으로 가야 했고 그 솔방울은 교무실 난로에 땔감으로 들어갔다. 가을이면 들에 나가 잡아온 메뚜기는 일본 선생들의 입으로 들어가고 또 소나무 잔솔가지도 주웠다. 지금의 제일여고가 긴자라는 일본 절이었다. 그 긴자에 일주일에 한 번씩 참배를 하러 갔다. 길 양쪽에는 큰 벚나무들이 하늘을 덮을 정도로 아름다운 거리였다. 그 벚나무에는 벌레가 많았다. 우리는 깡통에 줄을 끼어 하나씩 들고 벌레를 잡았다. 한통 잡지 못하면 집에 보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생활에 대해서 이필이는 ‘바로 노예’였다고 표현하였다. 사실 이필이 뿐만 아니라 식민지시대를 묵묵히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예였다.

1942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수필가 배대균은 그의 수필 ‘8의사를 기린다’에서 자신이 고생했던 일을 회고하고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수업을 전폐한 채 비행기 기름을 만든다면서 산에 솔갱이 따러 다녔으며 기름 짜는 공장까지 수 십리 길을 짊어진 채 오갔다고 한다. 허기져서 길가에 쓰러지기도 했다. 알고 보니 솔갱이는 일본인들의 땔감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말을 안한다고 종아리를 수없이 맞아서 피가 낭자했다고 한다. 일제시대 초등학생들의 힘든 일상생활이었다. 요즈음 국회의원 세 명의 5·18망언을 들으면서 보통사람과 ‘역사적인 죄인’이 함께 살고 있음을 새삼 확인한다.
 
전점석 운영위원(마산역사문화보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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