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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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2.25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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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봉명다원원장)
김선미
김선미

조계사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스님께서 입적하셨다. 스님의 입적을 슬퍼하듯 보슬비가 내리면서 주위를 평온하게 해 주고 있다. 한쪽에서는 복고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지고 평소와는 다르게 스님들의 발걸음 소리가 빗소리와 함께 들린다.

한 번 오면 돌아가는 길이 정해져 있지만 수행을 위해 뒤 따라 오는 불자들이 줄을 서고 있으니 아마 가시는 길에도 수행 밭에서 부족하고 미흡하고 아둔한 중생들의 지팡이가 되어 주시리라.

우주를 닮은 머리모양은 해탈에 이르러 무엇에도 치우침 없는 먹물 옷은 어리석은 사바세계를 버리고 흔적 없이 가기 위한 끝자락까지 붙들고 있는 정진의 세계, 어느 누구든 외길을 걸어가면 쓸쓸함도 외로움도 커지고 세상이 당긴 화살은 가슴에 깊이 박혀 혼자서 뽑는 연습을 오래 하다보면 어느새 수행자의 모습이 되어 간다.

스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은 다비로 거행되었다. 불교식 다비는 몸이 이루어진데서 다시 돌아가는 의식으로 ‘차 다’자의 ‘차비’라는 단어도 쓴다. 전통적인 불교의식으로 장작을 쌓아 올려 태우는 의식은 지수 화풍을 만나는 의미로 부처님께서 정반왕의 죽음 이후 거행된 의식이다. 모든 지구상의 인간은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내 딛고 있다. 걸음을 가만히 바라보면 각양각색 제각기 모습은 달라도 마지막 가는 길은 모두 같으리라. 봄바람의 살랑거림이 코끝을 부드럽게 감싼다.

마음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요트에 몸을 맡기고 주위 풍경을 둘러본다. 화가는 그림을 그릴 것이고 시인은 노래하고 소설가는 바다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차인은 차를 마시면서 마음을 씻어낸다. 손바닥 위에 올려서 바라보는 색깔이 비취색 같기도 하고 보라색 같기도 하다. 이름 모를 차 한 잔을 들고 바다에 떠 있는 요트 위에서 시간을 잊어보고 노를 저으며 통발을 던지는 할아버지의 노련한 배 솜씨도 세월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마치 인생은 크고 작은 항해 속에서 모습과도 같다.

마지막 가는 길 앞에서는 늙고 병듦이 없더라도 어떤 이는 짧은 시간이 평생이 되고 사는 모습만 다를 뿐 제각기의 인생의 의미는 같을 수가 없다. 병이 들고 사고로 인해서 혹은 잠을 자다가 가는 이들, 그들을 위해서 바다는 때론 위안과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악몽으로 악몽이 추억으로 자리바꿈을 하지만 거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맞서서 살아가다가 마치는 인생의 종점에서 다시 환한 세상을 맞이하는 다비식은 끝이 아니라 남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깨우치게 하지 않을까!

 
김선미(봉명다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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