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와 말그릇 교육
‘감히’와 말그릇 교육
  • 경남일보
  • 승인 2019.02.25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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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준(진주동명고등학교 교장)
학교에서 가르치는 국어교육의 내용영역엔 ‘듣기와 말하기, 쓰기와 읽기’에 ‘국어 지식(문법)과 문학’이 더해지고 근자엔 ‘매체 언어’가 추가되었다. 이것을 화법과 작문, 독서와 문법 등의 심화 교과로 가르친다. 문제는 이런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가면 학교에서 배운 내용들이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데, 근자의 정치권에서 내뱉은 말들이 이를 잘 증명해 준다.

7선 국회의원에 교육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여당 대표는 어떤 정치 사안에 대해 청와대와 대통령의 견해를 밝히라는 야당에 대해 ‘감히 촛불대통령에게~’라고 했고, 명문 과학고와 KAIST에서 공부한 야당의 청년최고위원 후보자는 대통령을 향해 ‘저딴 게 무슨 대통령’이라 하는가하면, 4선인 여당의 한 최고위원은 20대의 지지율이 낮은 이유가 ‘전 정부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탓’이라 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감히’라는 부사어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과감하게’라는 뜻도 있지만 ‘자신의 신분이나 능력 따위를 넘어서서 주제넘게’란 의미로 많이 쓰인다. 여기엔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의도(제가 어찌 감히 아버님의 잘잘못을 따지겠습니까?)도 있지만, 반대로 상대에게 군림(하인 놈이 감히 양반에게 대거릴 해!)하려는 권위주의적 의도도 있다. 또한 ‘저딴’이란 말은 ‘저러한 부류의’, ‘저따위’를 낮잡아 이르는 말로 ‘감히’ 대통령에게 쓸 말은 아니며, 여당 최고위원의 말은 무슨 일들을 자기에겐 유리하게 해석하면서 잘못을 상대에게 전가하려는 얄팍한 꼼수적 발화다.

코칭심리전문가인 김윤나씨는 ‘말그릇’이란 책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말을 담는 그릇 하나씩을 지니고 살아가는데, 그 말그릇 상태에 따라 말의 수준과 관계의 깊이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고 하면서 개개인의 ‘말습관’ 또한 말그릇에서 연유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여당 대표의 말은 권위주의 말그릇에서, 야당 청년최고위원 후보의 말은 재승박덕(才勝薄德)한 천박한 말그릇에서 나왔을 것이고, 여당 최고위원은 편협하고 주관적이면서 무책임한 말그릇을 가졌을 것이기에 이 봄의 벽두에 묻습니다. “당신의 말그릇은 청자·백자 같이 깨끗한 그릇인지, 아니면 우마의 구유나 재떨이 같은 그릇은 아닌지요?”
 
문형준(진주동명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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