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87]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87]
  • 경남일보
  • 승인 2019.02.2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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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진주가 낳은 세계적인 거장, 이성자 화백

김환기 화백의 그림 ‘나는 새 두 마리’에서 자유로운 영혼과 가족애를, 장욱진 화백의 ‘나무와 새’에서는 순수한 동화의 세계와 작가의 내면에 잠재된 이상세계를 만난 순간, 필자는 신선한 충격과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그림에서 시를 느끼고, 노래를 듣고, 화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어내는 순간, 이미 그 작품과의 소통이 이루어진 상태다. 예술작품과의 교감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감동과 더불어 행복감을 얻게 된다. 예술작품이나 문학작품을 통해 감동을 받았을 때, 우리 몸에서는 행복 바이러스인 다이돌핀이 생성된다고 한다. 그 바이러스가 정서적 품격과 행복감을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예술작품과의 교감을 통해 정서적 품격과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시창작반 수강생들과 함께 진주혁신도시 영천강변에 있는 진주시립 이성자미술관을 탐방했다.

이성자미술관이 건립된 지 5년이나 지났는데도 이제사 미술관을 찾은 필자가 진주시민으로서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아 좀 부끄럽기까지 했다. 이성자 화백이 기증한 유화, 수채화, 판화, 도자기 등 376점을 소장하고 있는 진주시립 이성자미술관은 2014년 12월 31일 준공되어 2015년 7월 개관기념전을 시작으로, 진주시민들은 언제든지 세계적인 거장의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

1918년 진주에서 탄생한 이성자 화백은 진주여고 전신인 진주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와 동경 짓센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 일본에서 귀국한 뒤 결혼한 이 화백은 따뜻한 가정을 일구어 오다 남편의 외도로 인해 이혼을 하게 된다. 1951년 6.25 전쟁이 한창이던 때, 서른셋의 나이에 아들 셋과 생이별을 한 이 화백은 프랑스로 건너가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하면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구상과 추상이 어우러진 초기를 거쳐 생명의 근원, 음양의 세계를 기하학적인 상징으로 표현하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으며, 말년에는 인간과 우주의 존재론적 성찰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해오다 2009년 향년 92세로 타계했다.

 
 
 

고독과 그리움이 키운 위대한 예술혼

‘내가 붓질을 한번 하면서, 이건 내가 우리 아이들 밥 한 술 떠먹이는 것이고, 또다시 붓질 한번 더 하면서 이건 우리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라고 여기며 그림을 그렸다’

이 화백이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림을 대하는 이 화백의 철학과 정서를 엿볼 수 있는 표현이다. 이번 이성자미술관 탐방을 통해 이 화백의 철학과 정서가 그림 속에 담겨 있음을 보았다. 이 화백의 그림은 모성의 발로(發露)이면서 모성(고향, 삶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와서 살아야 하는 고독감, 자식들과 생이별 한 뒤 자식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워진 현실과 함께, 그 외로움과 그리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가치가 그림 속에 공존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던 몸부림이 구상이 아닌 추상이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정서와 가치관이 이 화백이 그린 그림과 판화, 도자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당시의 현실적인 외로움과 그리움을 예술로 구현하기 위해 적절한 표현법을 찾은 것이 바로 추상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구상-나체’를 비롯한 초기작품에서는 이혼으로 인해 받은 상처와 고독,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이후 도자기와 판화, 노년의 작품들에서는 현실적 아픔들을 극복한 삶의 모습이 잘 형상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초월 12월 1, 75’,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오작교’, 도자기로 빚은 ‘빛나는 자연 1’등의 작품에서는 긴 세월 가슴에 새겨진 상처와 분노를 수많은 붓질로 삭혀 마침내 용서와 초월의 세계에 닿아있는 이 화백을 만날 수 있었다. 현실 속의 고독과 그리움을 추상적 예술로 아름답게 승화시켜 놓은 이 화백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고밀도의 행복을 선물해 준 훌륭한 작품

작품 ‘흰 거울’, 아무것도 비추지 못하는 흰 거울. 자신에 대한 애증이 뒤엉켜 마침내 그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마음을 잘 드러낸 흰 거울, 이 화백은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아픈 현실을 감추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흰 거울이 필요했고, 그 거울은 현실의 도피처이면서 재생의 꿈을 키우기 위한 둥지였을지도 모른다. 비록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현실이지만, 그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따뜻하고 포근한 색감으로 표현한 것이 참으로 탁월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화백의 삶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 앞에서 그 아픔을 공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는 이 화백의 심리와 정서를 너무나도 잘 표현한 흰 거울 앞에서 교감과 함께 큰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이땐 눈물을 흘려도 좋다. 위대한 작품과 교감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생이별한 세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재회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붉은 절망을 드러낸 작품인 ‘소중한 보물처럼’ 또한 희망적인 색감으로 마무리를 지어놓고 있다. 그리고 꿈속에서 푸른 치마를 차려입고 고향 진주를 만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시켜 놓은 ‘진주’, 그림 속 희미한 모습의 소녀는 분명 이 화백일 것이다. 푸르른 남강, 모래톱에 새겨놓은 어린 날의 꿈,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쌓은 성(城)을 포근하고 여린 색채로 다독여놓은 명작이다.

문학 작품을 읽고 감동을 받을 때가 있는 것처럼 훌륭한 그림 앞에서 우리는 감탄과 함께 감동을 경험한다. 그 순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밀도 높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이성자 화백이 건네준 고밀도의 행복감이 필자의 빈약해진 예술감각을 일깨워 준 하루였다. 미술관 옆으로 흘러가는 영천강 물길 따라 곧 봄이 오려나 보다. 오후의 볕살을 품고 흐르는 강바닥이 눈을 부시게 한다.

/박종현(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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