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야기] 알면 약초 모르면 잡초
[농업이야기] 알면 약초 모르면 잡초
  • 경남일보
  • 승인 2019.02.26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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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호(경남도농업기술원 약용자원연구소장 농학박사)
 
장영호 경남도농업기술원 약용자원연구소장 농학박사.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불필요한 식물들’. 잡초의 사전적 정의이다. ‘잡초’라는 말은 언제부터 등장했을까? 인간이 식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잡초라는 말을 사용했을 것이다. 식물은 자신이 자라고 싶은 곳에서 자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경작지를 정하여 인간의 경작 목적에 맞게 식물을 재배하고 변형시킨다. 그래서 인간이 재배하는 식물은 작물이라고 하고 인간이 경작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자라 인간에게 불필요한 식물이 된 것을 잡초(雜草)라고 한다.

인디언들은 작물과 잡초를 구별하지 않았다. 모든 식물과 동물은 자신의 영혼을 가지고 있고, 각기 존재의 이유가 있는 생명이며, 자신들의 친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잡초는 식용이자 약용이 되어주는 고마운 식물이었다. 반면에 우리의 사회적 가치 기준으로 보면 잡초는 쓸데없는 풀, 즉 돈이 되지 않는 풀이다. 경작지가 아닌 산야에 풀들이 있으면 이것을 잡초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인간이 표적을 두고 있지 않기에 통칭하여 산야초 혹은 들풀이라고 한다. 산야초 중에서 약재로 사용되는 것이 약초다. 약초는 야생일 수도 있고 경작될 수도 있다. 야생 약초의 경우엔 잡초라는 게 없지만 약초를 경작하는 밭에는 잡초가 경작자의 주의를 끈다. 왜냐하면 경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재배하고 있는 약초이지, 그 밭에서 마음대로 자라는 잡초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잡초는 농부의 가치에 의해 판단된다.

잡초는 밭에도 있고 논에서도 자란다. 쇠무릎이라는 잡초가 콩밭에서 자란다고 가정해보자. 쇠무릎은 농부의 손에 바로 뽑혀나가는 잡초일 뿐이다. 그런데 그 쇠무릎이 관절염 치료에 필요한 약초 우슬(牛膝)로 변할 때 쇠무릎은 더 이상 잡초가 아니다. 연약한 농작물 입장에서는 자기 밭에 있는 물과 영양분을 잡초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농부는 자신이 재배하는 농작물의 영역을 침범하는 잡초를 적대시한다. 농부가 목적으로 삼는 것은 오직 경작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부에게 잡초는 보잘것없는 것, 쓸모없는 것, 없어져야 하는 것이 되고 만다. 잡초냐 아니냐는 농부의 경제적 가치에 의해 선택된다. 잡초가 살아남게 되는 방식은 잡초가 경작물로 되고, 다른 것이 잡초가 된다는 선택적 가치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선택적 방식이 아니라 잡초라는 말 그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잡초가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잡초는 없다.’라는 인디언 사회의 가치가 적용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려면 무엇보다 ‘이익’이라는 것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인지 궁극적인 삶의 이익인지, 이익을 발생시키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보는 것만을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자기 기준의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모든 생명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태어났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상이변으로 작물생산이 어려워 ‘식량위기’가 왔을 때 잡초가 구황작물로 그 대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장영호(경남도농업기술원 약용자원연구소장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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