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출신 독립유공자수 모두 138명
창원출신 독립유공자수 모두 138명
  • 이은수
  • 승인 2019.02.2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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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발굴·명문가 인증사업 지속
‘여성유공자 발굴 접수창구’ 운영

창원은 1919년 3~4월 두 달에 걸쳐 13번의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거센 저항의 도시였다. 대부분 지역의 3·1의거가 그랬듯 창원도 처음에는 지역 인사와 종교계, 식자층의 주도로 시작됐다. 이승규, 이상소, 손덕우 등이 일제 식민지교육에 맞서 마산 최초의 민족 사학인 창신학교를 설립했고, 1907년에는 지역주민들이 자금을 출자하고 명도석, 김명규 등이 교사로 참여한 노동야학도 개교했다. 명도석은 어시장 객주 출신으로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후진 양성으로 이겨내고자 민족교육에 앞장섰고, 학교생활을 하며 자연스레 김용환, 김명규, 팽삼진 등 뜻있는 젊은이들과 교류하게 됐다.

김용환은 창원지역의 3·1의거을 가장 먼저 일으킨 인물이다. 1919년 3월 3일, 김용환은 고종의 국장을 보기위해 무학산에 모인 군중들을 상대로 조선의 독립과 항일투쟁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김용환은 비밀결사단체 ‘조선국권회복단’의 단원이기도 했는데, 마산지부는 지부장 안확을 중심으로 이형재, 김기성, 배중세, 변상태 등이 활동했다.

조국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는 여성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창원지역 여성들의 투쟁은 근대교육을 펼친 의신여학교와 기독교계 인사들이 중심이었다. 의신여학교 교사였던 박순천과 김필애는 세브란스 의전 학생 배동석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학생 최봉선의 집에서 시위를 모의했다. 최봉선은 당시 15살의 나이로 3월 21일 결사단을 조직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창원에서 태어난 김조이는 주기선, 주녕옥 등과 함께 웅천3·1의거 당시 웅천교회에서 시위를 준비했다. 특히 김조이는 남편 조봉암과 함께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부부로 알려져 있다.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에 공개된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 따르면, 창원 출신의 독립유공자는 138명이다. 창원시는 기미년 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아직 포상 받지 못한 독립유공자를 발굴하고, 독립명문가 인증사업도 실시한다. 특히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제고와 재조명을 위해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 ‘여성독립유공자 발굴 접수창구’를 운영하고, 발굴된 독립유공자가 있을 경우 당사자나 유족 등이 포상 신청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허성무 창원시장은 “독립유공자 분들이 계셨기에 오늘날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며 “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본받고,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의 명예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은수기자 eunsu@gnnews.co.kr

창원의 독립운동가 김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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