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의 가족
유관순 열사의 가족
  • 경남일보
  • 승인 2019.03.0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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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진주교대 교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19년 3월 1일이다. 가만히 생각하니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반세기 50년이 꿈결처럼 흘러갔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0년 전의 일이다. 소년 시절의 나. 그날 저녁의 라디오에는 3·1운동 50주년을 기념하는 특집 방송이 있었다. 출연자는 유관순 열사의 남동생이었다. 어린 소견에도, 각별한 분이 출연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 분은 지금의 내 나이인 60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50년 전의 그 방송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되지 않는다. 그 동안 출연자가 살아온 어려운 인생살이 얘기였을 것이다. 다만,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게 있다면, 출연자의 상습적인 말투였다. 말을 할 때마다, 늘 그저…그저…그저…라고 하는 특이한 말버릇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잊어지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니, 아마도 가족의 큰 불행, 가족사의 지울 수 없는 비극을 안고 ‘그저 그렇게’ 하늘의 뜻에 따라 살아온 것을 말하고자 하였으리라.

유 열사의 아버지 유중권은 일찍이 개명한 분으로서 육영에 뜻을 둔 지사였다. 그 부모는 3·1 운동 당시에 일본 경찰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죽음을 당했다. 이 역사의 현장이 천안의 아우내 장터다. 이 아우내는 두 냇물이 아울러 있다고 해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한자어로는 ‘아우를 병자(倂)자’를 쓴 병천(倂川)이라고 한다. 병천 순대로 유명한 그 병천 말이다. 지금의 병천 순대는 알아도 그때의 아우내 장터를 모른다면, 역사의 망각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물론 유 열사의 항일은 부모의 순국에 격분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이 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상정(常情)이라고 본다. 이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의기가 추호도 낮추어질 수는 없다.

유 열사의 오빠는 독립운동가 유우석이다. 그는 1919년 4월 1일에 일어난 고향인 천안에서 발생한 만세 운동에 참여하지 못했다. 같은 날에 자신이 재학하던 공주의 영명학교가 중심이 된 공주 읍내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만세 사건으로 징역 6월형의 선고를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이후에도 4년간에 걸친 영어(囹圄)의 생활이 포함된 지속적인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일제강점의 난세에 가시밭길을 걸었다. 그가 여동생의 유명세에 밀려 일반인들에게 무명의 운동가로 역사의 그림자 속에 흐릿하게 남아 있는 게 안타깝다.

유 열사의 남동생은 두 명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모와 누나가 순국하고 운동가인 형이 내내 어려운 삶을 살았기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었다. 두 동생은 여성 운동가인 형수에 의해 양육되었다고 한다. 50년 전에 라디오에 출연했던 유 열사의 남동생은 아명이 관복이었다. 1966년에 개봉한 색채 영화인 ‘유관순’에도 관복이 등장한다. 고난의 소년상 이미지가 아련하다. 나는 그때 이 영화를 가족과 함께 보았었다. 유 열사 역에는 여배우 엄앵란이 출연했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한국영상자료원에 필름조차 보관되어 있지 않다.

유 열사의 남동생인 관복은 형이 지금의 서울대학교 법대인 경성법전을, 누나가 이화학당 고등부를 다녔던 것과는 달리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강원도와 함경도를 전전하면서 탄광 노동자로서 가난의 삶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 열사의 가족이 동참한 아우내 장터의 만세 사건이 일어난 4월 1일은, 올해만이라도 또 다른 3·1운동의 기념일로 기억되고 기려져야 한다.

 
송희복(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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