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베트남 100시간' 빈손 결말
김정은의 '베트남 100시간' 빈손 결말
  • 연합뉴스
  • 승인 2019.03.0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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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이틀간 담판, 합의문 서명 못하고 결렬
북 최고지도자 55년만 베트남 방문…집권 후 최장기 외유
공식방문 일정은 시찰 등 빼고 회담·참배만으로 최소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과 베트남 ‘공식친선방문’을 위한 4박 5일간의 베트남 체류를 마치고 평양으로 귀환길에 올랐다.

지난달 26일 오전 전용열차로 베트남에 입국한 김 위원장은 2일 오후 다시 열차를 타고 베트남과 중국 국경을 넘어갔다. 그가 베트남에 머무른 시간은 대략 ‘100시간’.

집권 후 최장기 외유에 나서며 정권의 명운을 건 ‘승부수’를 던졌지만,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합의 채택에 실패하면서 결국 큰 성과 없이 평양으로 돌아가게 됐다.

김 위원장은 전용열차로 중국을 종단해 남하한 끝에 지난 26일 오전 8시 10분(이하 현지시간·한국시간 10시10분)께 베트남의 중국 접경지인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했다.

그는 동당역에서 전용차로 바꿔 타고 170㎞를 달려 수도 하노이로 이동, 오전 11시께 숙소인 멜리아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베트남에 도착한 뒤 첫 외부일정은 현지 북한대사관 방문이었다. 그는 오후 5시께 숙소를 나서 북한대사관에서 50여분 간 김명길 대사를 비롯한 현지 북한 주민들을 격려했다.

숙소로 돌아간 김 위원장은 27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2차 북미정상회담 일정에 돌입하기 전까지 꼭 24시간 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고 미국과 담판 전략을 검토하는 데 집중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8개월만의 ‘재회’는 27일 오후 6시 28분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이뤄졌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30분 정도 배석자 없이 단독 회담을 한 뒤 오후 7시 9분께부터 약 1시간 40분간 외교안보 핵심 참모 각 2인씩을 동반한 친교 만찬을 했다.

첫날 총 130분가량의 대좌를 통해 비핵화와 상응조치를 어떻게 교환할 것인지 의중을 탐색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28일에는 오전 8시 55분께부터 메트로폴 호텔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다시 만나 ‘본격 담판’에 들어갔다.

김 위원장은 회담 첫 순서였던 단독회담 모두발언에서 “자신 있느냐”라는 미국 측 취재진 질문에 “나의 직감으로 보면 좋은 결과가 생길 거라고 믿는다”고 답변해 성과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 문답은 김 위원장이 외국 언론의 질문에 사상 처음 답변한 사례로 기록되기도 했다.

30여분간의 단독회담을 마친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별도의 ‘4인 회동’을 가졌다.

이어 리용호 외무상과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추가로 배석한 확대회담이 진행됐다. 확대회담장에서는 ‘비핵화 준비가 됐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런 의지 없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해 회담 성과에 대해 기대감을 키웠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직감은 빗나갔고,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 해제의 교환을 두고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한 북미 정상은 결국 합의문에 서명하지 않은 채 각각 숙소로 복귀했다.

회담 결렬 뒤 1시간에 걸친 기자회견으로 미국의 입장을 설명한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김 위원장은 숙소에서 두문불출했다. 대신 리용호 외무상을 내세운 ‘심야 회견’으로 여론전 방어에 나섰다.

북미정상회담 합의 실패 후 김 위원장이 다시 바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꼬박 26시간 만이었다. 3월 1∼2일로 잡힌 베트남 ‘공식친선방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였다.

김 위원장은 1일 오후 3시 30분께부터 베트남 주석궁에서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과 만나 정상회담을 했다.

북미협상 결렬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서도, 김 위원장은 조부 김일성 주석 이후 55년 만에 베트남을 방문한 북한 최고지도자로서 일정을 수행했다.

그는 북미정상회담 지원에 대해 “성심성의로 모든 것을 다 해서 보장해주신 데 대해서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쫑 주석에게 감사를 표했다. 경제와 과학기술, 국방 등 모든 분야에서 베트남과의 교류협력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날 베트남 권력서열 2, 3위인 응우옌 쑤언 푹 총리, 응우옌 티 낌 응언 국회의장을 잇달아 만난 뒤 약 2시간 30분에 걸쳐 쫑 주석과 환영만찬도 가졌다.

그러나 당초 예상됐던 경제현장이나 관광지 시찰 등은 없었다. 합의 없이 끝난 북미정상회담의 허탈함이 일정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체류 마지막 날인 2일, 김 위원장은 오전 9시 30분께 4박 5일간 묵었던 멜리아 호텔을 나섰다.

그는 마지막 일정으로 ‘베트남의 국부’이자 할아버지 김일성과 긴밀한 유대를 지녔던 호찌민 전 베트남 국가주석 묘소를 찾아 헌화했다. 하노이에서 다시 차를 타고 낮 12시 30분께 동당역에 도착, 대기하던 전용열차에 올랐다.

전용열차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김 위원장은 뒤를 돌아 환송 나온 베트남 주민들에게 마지막으로 힘차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 속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고민이 읽힌다.

연합뉴스





 
김정은, 베트남 전쟁영웅·열사 기념비에 헌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베트남 공식친선방문 일정을 마치고 평양으로 출발한 소식을 1면과 2면에 보도했다. 사진은 김 위원장과 수행원들이 2일 베트남 전쟁영웅·열사 기념비 앞에서 묵념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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