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경남의 3·1독립운동 ⑫함양
[특별기획]경남의 3·1독립운동 ⑫함양
  • 임명진
  • 승인 2019.03.0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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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함성, 일천 구백 십구년 삼월 이십팔일. 합양 읍내 장터에서 외친 대한 독립 만세의 함성은 대관림과 한들을 누비며 맴돌다가 왜경의 총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빼앗긴 주권과 글과 노래와 풍습을 되찾고 자주 독립을 쟁취코자 분연히 일어선 기미독립만세에 뒤따라 이 고장에서도 총검에 맞서 귀중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만세의 대열에 뛰어들었던 민중이 천 명을 넘어섰다는 일은 우리의 자랑이다(중략)~’

함양군 운림리 상림공원에는 위와 같은 비문을 담은 함양읍 만세 기념비가 서 있다. 높이 2.3m, 둘레 2.5m, 폭 0.5m의 규모의 이 기념비는 1985년 12월에 건립됐는데 100년 전 함양지역에서의 뜨거웠던 만세의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기미년 3월1일에 촉발돼 전국적으로 일어난 만세의거는 함양에서도 가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보면, 함양지역의 피해는 사망자 3명, 부상자 12명, 투옥자 20명으로 기록돼 있다. 안의는 사망자 6명, 부상자 15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자세한 상황은 함양문화원이 2007년에 펴낸 ‘함양 항일투사록’, ‘함양군지’ 등에 소상히 담겨져 있다.

함양의 만세의거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다소 늦게 시작됐다. 지역유지 정순길, 윤보현, 정순귀, 노경식 등이 모여 함양읍 장날인 3월28일 거사하기로 하고 준비를 서둘렀다.

오후 3시께 많은 인파가 장터에 하나 둘 모여들자 정순길, 윤보현 등은 준비해 간 태극기를 꺼내들고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외쳤다.

이들의 외침에 인파들이 호응하면서 어느 순간 ‘대한독립만세’의 외침이 장터를 발칵 뒤흔들어 놓았다. 놀란 일본 헌병이 강제진압에 나서면서 시위는 한층 격화됐다.

만세의거에 동참한 군중의 수는 갈수록 늘어났지만 일본의 무력 진압에 주동 인물들이 체포되면서 막을 내리는 듯 했다.

하지만 통분을 참지 못한 김한익 지사는 다음 장날에 재차 의거하기로 결심하고 밤낮으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고 동지를 규합했다.

마침내 4월2일 장날이 되자 김한익 등은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장터 중앙에 쌓인 소금포대에 올라 독립만세를 선창했다.

장날에 모인 3000여 명의 함양사람들은 일제히 이에 호응하면서 다시한번 대한독립 만세의 외침이 함양 전역에 울러펴졌다.

일본 헌병대가 주동자인 김한익 등을 체포 구금하자 격분한 군중들은 헌병대로 몰려가 석방을 요구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일본 헌병의 발포로 하승현 지사가 총탄에 숨졌고, 그의 아버지 하재연과 숙부 하재익도 모두 총탄에 쓰러졌다. 일가족이 피를 흘리고 쓰러진 광경을 목격한 함양사람들은 의분을 참지 못하며 일본군의 위협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안의 만세의거

함양의 독립만세 의거는 함양읍 장터에서만 열린 것은 아니었다. 수동면 상백리에 사는 고재경, 정재원은 3월25일 안의장터에서 만세의거를 계획했으나 미리 첩보를 입수한 일본 헌병들의 경계가 심해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일본이 삼엄한 경비를 펼쳤지만 안의지역에서의 만세의거는 사실상 시간 문제였다. 마침내 전병창, 임채상, 정순완, 전재식, 조제헌, 김채호, 최석룡 등의 인사들이 비밀리에 모여 3월31일 안의읍 장날에서의 만세의거를 준비했다.

당일 장터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오후 1시께 전병창, 임채상 등 5명은 장터 복판에서 미리 준비해간 태극기 등을 인파들에게 나눠주고 앞장서 독립만세를 외치려고 했으나 달려온 일본 헌병대에 모두 체포되고 말았다.

장터의 인파들은 애국지사의 체포과정을 지켜보면서 통분을 감추지 못했다.

오후2시가 되자 일제의 감시망을 피한 최석룡이 다시 준비해 온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높이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장터에 모인 군중들이 호응했다.

이들은 오후 7시무렵까지 장터 일대를 누비며 연행해 간 주동인물의 석방을 요구하는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에 당황한 일본은 인근 거창수비대의 지원군을 요청하는 등 병력을 증파해 간신히 강제 해산했다.

함양의 만세의거는 비록 타 지역보다 늦었지만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값진 희생으로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만세의거를 주도하다 검거된 김한익 지사는 1년 6개월동안 옥고를 치뤘으며, 윤보현 지사는 8개월, 정순길, 정순귀는 진주 감옥에서 태형 90대의 옥고를 겪어야 했다.

그외 수많은 함양 애국지사들이 잔인한 고문의 영향으로 불구에 가까운 휴우증에 시달려야 했다.

함양의 만세의거는 지역 청년들과 군중들의 독립자각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3.1만세의거 이후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피해 지하단체를 조직, 독립운동을 역량을 키워나가는 한편 타향이나 만주 등 외국으로 나가 활동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자신을 희생해 가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이 있어 불의에 굴하지 않는 함양사람들의 기개와 정신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함양의 애국지사들이 그 공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100주년을 맞아 알려지지 않고 묻혀져 있는 애국지사들을 발굴해 그들의 나라를 향한 애국정신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다.


임명진·안병명기자 sunpower@gnnews.co.kr

 
 

 [인터뷰]김흥식 함양문화원장
함양은 일제강점기 전후 수많은 이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다. 3·1만세의거 당시에도 함양은 자발적으로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해 거세게 타올랐다.

현재 천년의 숲 상림공원 내 사운정 인근에는 이를 기념하는 ‘만세기념비’와 함께 당시 의기를 떨쳤던 하승현 선생과 김한익 선생을 기리는 사적비가 서 있다. 다음은 김흥식 함양문화원장과의 일문일답.

-함양지역 3.1만세 의거를 평가해 본다면?

△1919년 3·1만세의거 당시 함양은 다른 지역에 비해 여러 곳에서 자율적인 단체가 조직돼 오랫동안 의거를 계속했다. 선비, 농민 구분없이 많은 군민이 만세시위에 동참했으며, 이로 말미암아 수많은 이 애국지사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수많은 함양사람들이 투쟁을 하고, 목숨을 바쳤기에 지금 우리 후손들은 행복을 누리고 살고 있는 것이다.

-3·1운동 100주년의 역사적 의미는?

△100주년이 된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기적의 역사를 이루었다 3·1독립만세의거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면서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다. 함양이 생긴 이래로 가장 많은 사람이 모였다. 정말 감격스러웠다.

4만 인구에 이렇게 많은 군중이 모인 적은 없었을 것이다. 아마 4000여 명은 될 듯 싶었다.

특히 시가행진을 하다 보니 연세 높으신 분보다는 초·중·고 학생들과 청장년 층이 많았다. 3.1운동 100주년 행사의 의미를 살리기에 충분했다.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앞으로의 계획은?

△우리 문화원은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미표창 항일투사들의 발굴도 노력할 것이다. 독립투사 후손들의 상처를 보듬고, 선열들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고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사업도 추진해 나갈 것이다.

해마다 함양인으로서 훌륭한 선현들을 찾아 대학교수들에게 의뢰하여 학술발표와 토론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지난해는 노응규, 문태서 의병장을 주제로 학술회의를 가졌다. 올해는 3·1만세의거 100주년을 맞아 함양의 독립투사를 중심으로 학술회의를 가질 계획이다. 함양군 차원에서도 조국에 대한 애국심과 함양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인문학 강의 등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했으면 좋겠다.

안병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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