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가슴에 이름표를 달았으면
아이들 가슴에 이름표를 달았으면
  • 경남일보
  • 승인 2019.03.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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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향(시인·초등학교 교감)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학교는 새로운 열매를 맺을 새싹을 틔우기 위한 준비로 분주하기만 하다. 입학으로 신이난 일학년 아이들이 복도를 ‘우당탕 쿵탕’ 뛰어다닌다. 가슴에 이름표를 부착한 걸로 봐서 일학년이다.

전담교사와 각종 강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아이들 이름 불러주기의 중요성에 따른 ‘이름표를 가슴에 달았으면’ 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대규모 학교의 전담교사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안불러줘도 수업에 문제는 없지만 매번 “거기~빨간 옷을 입은 아이, 어이~ ” 등으로 부를 수도 없고 매차시마다 고정석에 앉힐 수도 없어 이름 파악이 어렵다고 입버릇처럼 말들을 한다. 학년초에 학급사진 찍어 1년 내내 사진보고 얼굴보고 이름을 외운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다 교사의 실수로 이름을 잘못 부르면 아이들로 부터 낭패를 당하기 일수다. 이름 외우는 건 포기하고 멋진 별칭으로 많이 불러주니 그나마 좋아한다고 하나 차제에 학교 안에선 학년에 따라 각기 다른 색상의 이름표를 부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름표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괴 사건이후로 문제시되어 학교에 두고 다니다가 어느 날 아예 사라졌고 대다수의 초등학교에서는 아쉬운대로 일학년만 한달간 학교 안에서만 달고 다닌다.

아이들에게 “수업 잘하는 게 중요하니 이름 불러주는 게 중요하니?”라고 물어보면 자기들의 이름 불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들을 하는 걸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어른들도 옛날엔 택호가 있어서 이름 대신 부르기도 했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중년이 넘은 할머니들은 택호를 부르기도 하고 누구엄마, 누구아빠, 옆집아저씨 등으로 불려져 존재의미도 함께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이름을 정답게 불러주는 것은 자존감 향상을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의 ‘꽃’ 전문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우리 아이들 뿐 만 아니라 어른들 개개인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은 의미 있는 일로 보인다.
 
최숙향(시인·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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