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의 경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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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3.1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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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 거장’이자 ‘샤넬의 전설’ 이었던 카를 라거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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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라거펠트(Karl Otto Lagerfeld)는 1933년 9월 10일(추정)에 독일 함부르크에서 스웨덴 태생의 유제품 사업가인 아버지 오토 라거펠트(Otto Lagerfeld)와 프로이센 출신의 어머니 엘리자베트 발만(Elisabeth Bahlmann) 사이에서 태어났다. 라거펠트가 패션과의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16세인 그를 어머니가 1949년 12월 13일 빠리에서 열렸던 크리스티앙 디오르(Christian Dior) 패션쇼에 데려가 준 것이었다. 그림에 열정을 가졌던 그는 그때부터 의상 디자인 분야의 스케치에 빠져들게 된다. 그는 그의 어린 시절과 부모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상한 바 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함부르크)는 세상으로 향하는 문과 같다. 문은 문일 뿐이란다. 그러니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가렴!’... 아버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허락해주신 분. 어머니, 내가 길을 잃을 때마다 인도해주시고, 정신 차리라고 내 따귀를 때려주신 분.”

1952년에 카를 라거펠트는 어머니와 함께 독일을 떠나 패션의 수도인 빠리에 정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사립학교를 다니다가 몽떼녀(Montaigne)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패션 도안 분야에서 열정을 쏟던 그는 1954년 11월 25일에 울마크(Woolmark)사가 후원하고 국제 양모 사무국이 주최한 콩쿠르에서 이브 생 로랑과 함께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 콩쿠르의 심사 위원이었던 당시 유명 패션디자이너이자 의상가였던 삐에르 발맹(Pierre Balmain)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제자 겸 조수로 기용하게 된다. 1955년부터 1962년까지 그와 함께 일하면서 그리고 이브 생 로랑과의 우정 어린 교류를 통하여 빠리 패션계에서 그의 입지를 굳혀가게 된다.

그는 1959년에 의상 디자이너 쟝 빠뚜(Jean Patou)의 예술 디자인 총감독에 임명되면서 프랑스는 물론, 이탈리아, 독일과 일본에서도 그의 독특한 패션 스타일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1963년부터는 브랜드 끌로에(Chloe)에서 20년간 고급 기성복과 액세서리들을 창안해 내었는가 하면 이탈리아 브랜드인 펜디(Fendi)를 위해서도 패션 작품들을 창출해내게 된다. 카를 라거펠트가 패션계에서 그의 명성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끌로에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1983년에는 드디어 샤넬(Chanel)의 최고급 하이패션과 고급 기성복 및 액세서리 예술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부여받게 된다. 그는 최초로 전속 모델로 이녜쓰(Ines de La Fressange)와 독점계약을 맺었는가 하면 흑백 대비의 절묘한 아름다움을 창출해내면서 샤넬을 몰락의 위기에서 부활시키는데 성공하였다.
Karl-Lagerfeld-Paris-Apartment

“가장 잘 만들어진 패션 아이템이 무엇이라고 생각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화이트 셔츠. 내게 있어서 한 벌의 셔츠란 모든 것의 기본이자 시작이다. 나머진 저절로 뒤 따라 온다.” 그는 늘 화이트 셔츠에 블랙슈트를 즐겨 입고 다녔다. 그의 의상 콘셉트는 흑백 대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단순명료하면서도 간결함이었다. 그가 재창조한 샤넬 신화는 기존의 코코 샤넬의 클래식함에다 젊은 층이 열광할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도록 한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그를 두고 패션계의 교황으로까지 불리게 되었고, 샤넬의 역사를 새로 쓴 세기의 디자이너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는 맹목적으로 허영과 사치를 쫓는 사람들을 이렇게 꼬집은 바 있다. “오늘날 럭셔리는, 진정 럭셔리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값비싼 것을 사들이는 행위이다…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삶을 살라.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인 럭셔리다!”

카를 라거펠트는 “나는 치명적인 ‘책 중독’을 앓고 있다. 치료 받고 싶지 않은 병이다”라고 말할 만큼 대단한 독서가였고 수십만 권의 장서를 보유할 정도로 책 중독자였다. 그는 그토록 책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결국 1999년 빠리에 책방 ‘7L’을 열기도 하였다. 그는 독서를 통하여 수많은 영감과 디자인 콘셉트들을 얻어내기도 하였고, 어느 누구보다도 확고한 자기 철학과 가치관을 소유했던 디자이너였다.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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