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
인연(因緣)
  • 경남일보
  • 승인 2019.03.1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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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홍(경상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임규홍 교수
임규홍 교수

해마다 봄이 되면 늘 생각나는 것이 하나가 있다. 겨우내 아무런 흔적도 없던 나뭇가지에서 예쁜 꽃을 피우는 나무들을 보면서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다. 이걸 두고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 하는 건가? 어떤 나무는 나뭇잎이 나오기도 전에 꽃을 내뿜기도 하고, 또 어떤 나무는 잎을 피우고 난 뒤에 꽃을 피우기도 한다. 하양 꽃, 분홍 꽃, 노랑 꽃, 붉은 꽃 각양각색의 꽃들을 피운다. 이처럼 세상 삼라만상 자연은 신비하게 모두 자기 몫으로 빛을 낸다. 이 모두 시절인연이 되어서 나타나는 것이다. 귀하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고, 아름답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 세상은 더욱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없던 나뭇가지에서 예쁜 꽃이 나오는 것을 보면 나무는 겨우내 저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힘든 잉태의 시간과 인연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 송기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뭇 고통을 노래한 미당의 시도 떠오르기도 한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그저 주어지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인연(因緣)이라 한다. 인(因)은 원인이고, 연(緣)은 그 인으로부터 생겨난 결과이다. 인연생기(因緣生起)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 내가 이 순간 존재하는 모습도 모두 원인에 의한 결과의 모습일 뿐이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철학에서는 인과율(因果律)이라고도 한다. 칸트는 인과율을 ‘어떤 규칙에 따라 불가피하게 그러한 상태의 뒤를 잇는다’라고 하면서 ‘모든 변화는 원인과 결과와의 결합의 법칙에 따라서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지는 자연계의 모든 현상도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우연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인간의 생로병사도, 행불행도, 만남과 이별도, 성공과 실패도 모두 나름의 원인이 있고 인연에 의해 일어날 뿐이다. 이를 사필귀정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다보면 어떤 사람은 원인을 늘 남에게 돌리는 사람이 있다. 잘되고 좋은 결과는 자기 때문이고, 잘못되고 나쁜 결과는 남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 본다. 그러나 인생을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일들은 엄밀히 따져 보면 남으로부터 일어난 것보다 자기로부터 일어난 것이 훨씬 많다. 우리는 이러한 잘못된 일들이 내 탓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내 탓이 아니라고 스스로 위무하면서 살아간다. 그게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30년 전 고 김수환 추기경의 ‘내 탓이오’라는 말씀이 오늘따라 더 크게 울리는 봄이다. 나를 되돌아보고 좀 더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임규홍(경상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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