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오늘 당신은 ‘무엇’을 봤나요?
[여성칼럼] 오늘 당신은 ‘무엇’을 봤나요?
  • 경남일보
  • 승인 2019.03.2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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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성 (경상대학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란 말이 있다. 지어낸 이야기인 영화보다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더 지어낸 이야기 같다는 이 말은 버닝썬 게이트로 시작되어 사실들이 줄줄이 밝혀지고 있는 요즘에 딱 어울린다. 거미줄 같은 유착 관계와 사생활이라는 이름 아래에 저질러졌던 범법 행위들, 그중에서도 논란이 되는 가수 정준영의 카톡은 가히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공인인 그들이 몰카를 촬영하고 그 동영상을 단체 카톡에 공유하여 시시덕거렸다는 사실보다도 그 몰카의 피해자 중 여성 연예인이 있다는 뜬소문에 그 연예인이 누구인지 찾아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포털사이트 연관 검색어에 버젓이 여성 연예인의 이름 석 자가 함께 뜨고, 정준영이 불법 촬영했다는 그 동영상을 궁금해하는 것이 더욱 충격이다. ‘호기심’이라는 말은 면죄부가 될 수 없는데 말이다. 2차 가해자들은 자신의 행동이 2차 가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이 없기 때문이다. ‘몰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는 ‘불안’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재미’ 혹은 ‘호기심’으로 해석된다. 몰카 촬영과 유포는 분명한 잘못인데, 2차 가해는 잘못인 줄 모르는 것이 씁쓸하다.

이번 일을 두고 주변에서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다’라고 정준영을 옹호하는 말들도 꽤 많이 들어봤다. 그러한 옹호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도 그 범죄 앞에서 완전히 당당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 사건이 버닝썬 게이트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과 가해자가 공인이었다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그리 놀라운 범죄는 아니다. 몰카는 비단 그들 몇몇만의 문제가 아니다. 평범한 생수병이나 안경, 볼펜 등 어떤 것으로든 둔갑할 수 있는 초소형 카메라를 클릭 몇 번으로 구매할 수 있는 나라, 우리나라 몰카 범죄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굳이 다시 얘기하지 않겠다. 직접 촬영하고 유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국산 야동’, ‘일반인’ 등의 수식어가 붙은 불법 촬영물을 본 사람들은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다. 불법 촬영물로 인해 피해자가 목숨을 끊으면 ‘유작’이라는 이름을 붙여 소비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에게 여성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성적대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쓰고 버리고 나면 그만인, 그런 소비재 말이다.

지난해 8월 경찰은 ‘웹하드 카르텔’과 불법촬영 등 사이버 성폭력에 대한 특별수사단을 꾸려 약 100일 동안 3600여 명을 검거했다고 한다. 완전히 근절시키지는 못했을지라도 의미 있는 숫자라고 생각했고, 이에 대한 나비효과로 몰카의 심각성에 대해 조금은 각성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몰카에 대한 목소리가 커질수록 더 걱정하고 조심하는 것은 피해자 측이었지 1차 가해자와 2차 가해자들의 변화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불법 촬영물뿐만 아니라 ‘몸매 평가’, ‘얼굴 평가’ 또한 같은 맥락이다. 상대를 한 명의 동료 시민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단톡방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대화가 오고 갈 것이며, 자신들은 들키지 않아 다행이라며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옛날부터 여성은 사회에서 동료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시간이 흘러 변화하고는 있다지만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이런 생각들이 의식의 성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변화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면 강제력이 필요하다. 현 사건 통해, 당사자들을 처벌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관련한 법률적인 시스템을 재정비하여 강력한 제제가 필요하다. 숨어 있던 사람들에게 ‘당신도 언제든 들킬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야 할 때다.

 
이희성 (경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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