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의 경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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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3.2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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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선진국을 건설해낸 바이킹의 진취성과 지혜
 
Viking at MN Capitol
viking dOseberg



바이킹(Vikings)은 노르드 어 비킹그(고대 노르드어: vikingr)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이들은 8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 스칸디나비아의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을 중심으로 거주했던 게르만족 노르드인으로 뛰어난 항해술과 조선술, 전투력과 직조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바이킹들은 인구증가와 농지부족 사태에 직면하자 약탈에 나선다. 날렵하게 생긴 긴 배를 몰고 스칸디나비아로부터 북유럽과 중앙유럽까지 항해하며 교역을 하거나 약탈하기도 했다. 바이킹이 유럽으로 쳐들어갈 때나 그린란드와 북미대륙을 탐험할 때 사용한 배는 흔히 ‘롱십’(Long Ship)이라 불리는 가늘고 긴 선체이다. 그리고 바이킹의 배는 앞뒤가 없다. 약탈을 한 뒤 서둘러 돌아와 배를 돌리지 않고 빨리 도망갈 수 있게 한 것이다.

군사적 세력 확대와 상업적 성장 및 인구 팽창을 통하여 중세 스칸디나비아뿐 아니라 브리튼 제도, 아일랜드 섬, 프랑스, 키예프 루시, 시칠리아 등 광범한 지역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롱쉽으로 대표되는 진보한 항해 기술로 인하여, 본거지인 스칸디나비아에서 멀리 떨어진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까지 바이킹의 활동이 미친 적도 있었다. 바다와 강을 통한 탐험과 식민의 시기가 지난 뒤 바이킹들은 북서유럽, 러시아, 북대서양 도서, 멀리는 북아메리카 북동해안에 이르기까지 각지에 정착하면서 노르드 문화가 다른 지역으로 폭넓게 보급됐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해안이 바이킹의 영향권에 들어갔으며 잉글랜드 영토의 태반이 바이킹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바이킹들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는 발트 해 연안,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을 장악하였다. 9세기 초, 바이킹은 대형 보트를 몰고 프랑스의 론 강이나 센 강을 비롯한 내륙 수로를 따라 공격을 감행했다. 바이킹이 건설한 도시로는 잉글랜드의 요르비크(현 요크), 우크라이나의 키이우, 아일랜드의 더블린 등이 있다. 한편, 스웨덴 출신 바이킹들은 동쪽 발트족과 슬라브족의 땅(오늘날의 발트 해 연안,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에 진출해 루리크가 최초의 슬라브 국가를 건설하였다. 이 지역의 강을 따라 흑해, 콘스탄티노폴리스(현 이스탄불), 비잔티움 제국에까지 진출했다. 노르웨이 출신 바이킹들은 주로 북서쪽과 서쪽으로 향해 페로 제도, 셰틀랜드 제도, 오크니 제도, 아일랜드, 영국 북부와 아이슬란드에 진출했다. 아일랜드와 영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인도거나 거주자가 거의 없는 상태였으며 노르웨이인들은 그곳에 정착했다.

8세기 말에서 11세기 말까지의 약 300년간 유럽 기독교 문명권을 강타한 해양민족 바이킹의 중심은 덴마크에 살던 바이킹이었다. 노르웨이 바이킹은 탐험과 개척, 덴마크 바이킹은 전쟁, 스웨덴 바이킹은 장사를 주특기로 하였다. 특히 덴마크 바이킹은 대부대를 조직하여 정복에 나섰다. 유럽의 현존 왕가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덴마크 왕가이다. 965년 덴마크의 해롤드 왕은 부하 바이킹들과 함께 원시신앙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했다. 기독교를 가장 늦게 받아들인 바이킹이었지만 16세기 초,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맨 먼저 신교로 개종하였다. 신교가 84%이다.

한편, 스웨덴 바이킹족은 장사꾼 기질을 살려 러시아, 흑해, 비잔틴 제국 등 동남쪽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볼가 강을 타고 내려가 흑해에 이르고, 지금의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두었던 비잔틴 제국과 교역하는가 하면 일부는 바그다드까지 진출하여 아랍 사람들과 장사를 했다. 유엔개발기구(UNDP)가 발표한 2010년 세계 ‘삶의 질’ 국가별 순위에서 늘 상위권에 드는 나라는 스칸디나비아 5개 국가이다. 1위 자리에는 노르웨이, 9위에 스웨덴, 16위에 핀란드, 17위에 아이슬란드, 19위에 덴마크가 올랐다. 정치, 경제, 교육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북구의 바이킹 국가들이 늘 10위권에 든다. 바이킹은 무역, 탐험, 이민, 해운에 주력하고 진취적인 삶의 자세를 유지함으로써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평등정신에 기초한 사회 복지 제도도 만들었다.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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