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인심이 그립다
시골인심이 그립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03.2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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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웅(전 진주시문화원 부원장)
이무웅
이무웅

호박은 생명력이 강해 어디에 심든 잘 자란다. 당장 모서리 자투리땅 어느 곳에 심어도 긴 넝쿨을 뻗고 꽃을 피워 여름 한철 골목 풍경은 생동감이 넘친다. 활짝 핀 호박꽃 속으로 꽃분을 따는 벌들의 모습이 아름답기까지하다.

무논에는 농민들이 물기를 낮추고 논매기를 하고 밭곡식 이랑을 북돋우고는 즐거운 중참시간에는 애호박 넣고 수제비 끓여서 담장 너머 이웃집도 한 바가지 씩 나누는 모습은 한가로워 보인다. 멀리서 바람결에 들리는 매미소리 자장가 삼아 밀짚모자로 하늘을 가린 채 단잠을 자는 것은 흔히 볼 수 있었던 농촌의 풍경이다. 볏짚 지붕 용마름 사이로 꽃 봉우리 얼굴 내미는 호박은 햇살을 받아 성장속도도 빠르다. 그래서 ‘애호박이 누렁 호박보다 후하다’는 말이 생겼다. 연달아 싱싱하게 마디마디 열리는 호박은 내 것 네 것 따지지 않고 편하게 따다가 한여름 식탁을 채웠다.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정 나눔에 익숙해져 별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시골의 정은 많이 변했다. 산업화에 따라 콘크리트 빌딩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는 사람은 매일 봐도 다른 얼굴들이다. 이웃을 모르고 인사하는 것도 습관이 안 돼 낯선 나라에 온 것처럼 불편하기까지 하다.

옛날 사람들은 손자 앞세우고 들녘으로 나들이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손자가 오줌이 마렵다고 하면 노인은 얼른 두 손을 모아 움켜 오줌을 받아 논이나 밭에 뿌려 주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손자 보고 아무데나 오줌을 누지 말라고 타일렀다. 논밭의 벼가 오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고 가르쳐 주었다. 누구나 길을 가다 오줌을 누고 싶을 때면 어김없이 논이나 밭 가운데로 갔었다. 그 논밭이 누구의 것인가는 문제되지 않았다. 논밭은 곡식이 심어져 자라는 터이다. 거름 삼아 논밭에 오줌을 누게 되면 그만큼 곡식이 잘 자라게 된다는 생각에서다.

이러한 마음 씀씀이가 곧 이웃의 정이다. 꼭 가까이 사는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것이 이웃 정이 아니다. '이웃 정'은 사회생활의 정으로 확대된다. 보잘 것 없는 오줌 한 방울에서도 서로 돕고 살아야 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웃 정이다. 이런 이웃 간의 정이 고을인심이 되고 나라의 민심이 되는 세상이어야 살기가 훈훈해진다. 옛날 이웃 간에 나누었던 정들을 되새겨보면 진정한 이웃이 그립고 아쉽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찬 하나라도 나누면서 서로의 정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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