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최남선과 박치화가 쓴 독립선언서
[경일포럼] 최남선과 박치화가 쓴 독립선언서
  • 경남일보
  • 승인 2019.03.2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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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경남작가회의 회원)
지금도 60대 이상은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인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하는 독립선언서를 외우는 사람들이 많다. 뛰어난 명문장으로 손꼽히는 이 글을 고등학생 시절에 열심히 외웠다. 한참 후에야 이 서울선언서를 작성한 최남선이 친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깜짝 놀랐다. 최남선이 작성한 초안을 몇 사람이 돌려보았는데 한용운은 내용과 문장이 너무나 온건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결국 한용운이 공약 3장을 추가하여 완성하였다.

그런데 서울선언서만 있는 게 아니라 경남지역에서도 독자적인 선언서를 작성하여 낭독, 배포하였다. 그만큼 경남지역의 독립의지가 강하였음을 느낄 수 있는 사례이다. 하동군에서는 3월 13일 하동시장에서 첫 시위가 있었다. 이를 본 적량(赤良)면장 박치화(朴致和)는 다음날, 돌연 사표를 내던졌다. 그는 3월 18일 하동 읍내의 장터로 나가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시위를 주도 하였다. 박치화의 행동이 도화선이 되어 군중들은 곧바로 무리를 지어 시위를 했다. 그가 읽은 ‘대한독립선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황천(皇天)이 주시고 신명(神明)이 도우사 세계평화의 회의(會議)가 창개됨에 반(伴)하야 민족자결의 여론이 병기(幷起)하는 차호시운(此好時運)이 래(來)하얏도다. 오호(嗚呼)라 십개성상(十個星霜)을 타의 기반 하(羈絆 下)에서 인통신음(忍痛呻吟)하던 우리 대한 동포여, 확호(確乎)한 정(精)을 려(勵)하야 신속(迅速)히 수(手)를 착(着)하라. 시(時)가 래(來)하고, 운(運)이 복(復)하얏네, 주저(躊躇)치 말며, 관망치 말고, 우리의 사업을 우리의 심력(心力)으로 자결 단행합시다. 아(我)의 심기설봉(心機舌鋒)은 타(他)의 장쟁거포 보다 우승(優勝)하니 일심단체(一心團體)로 광복지(光復地)로 병향(幷向)합시다. 최후의 일인과 최후의 일각까지 폭동과 난거(亂擧)는 행(行)치 말고, 인도(人道)와 정의로 독립문으로 전진합시다. 어희(於戱)라 대한광복과 동양친목과 세계평화가 금일로부터 실현되얏소. 분기(奮起)하고 맹진(猛進)하라. 우리 반만년 신성한 역사와 삼천리 금수(錦繡)의 강토(疆土)를 유(有)한 우리의 동포여!’

서울과 하동군의 독립선언서를 보면 그들은 모두 파리강화회의와 민족자결주의가 독립요구의 중요한 계기임을 알고 있었다. 서울선언서의 공약삼장에 있는 ‘최후의 일인과 최후의 일각’이라는 표현이 하동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며 모든 행동은 먼저 질서를 존중하자는 표현 역시 ‘폭동과 난거는 행치 말고’라고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선언서에는 '어떤 힘인들 우리를 꺾지 못할 것이며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겠는가'라는 자신감이 나타나 있다. 하동선언서 역시 우리의 평화시위가 일제의 총칼을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있다. 이날 박치화가 읽은 독립선언서는 자신이 직접 작성한 것이었다.

1986년, 그의 고가(古家)의 천장 속에서 이 선언서의 원본이 발견되어 현재 독립기념관에 진열되어 있다. 지방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독립선언서이다. 박치화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대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해방 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도 참여하는 등의 활동으로 아직까지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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