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89)구례 사성암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89)구례 사성암
  • 경남일보
  • 승인 2019.03.26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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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성인이 머물던 수행처, 사성암

20여 년 전, 처음 구례 사성암을 갔을 때의 느낌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산 정상 근처,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걸터앉아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 매달려 있는 약사전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 뒤, 서너 번을 더 갔던 적이 있다. 그때마다 수행자의 자세로 암벽에 붙어있는 사성암의 이미지는 세속을 벗어나 탈속의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갈 때마다 내 마음속에 낀 때를 조금씩 덜어내고 오는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워지고 기분도 상쾌해졌다. 봄이 오는 길목, 번잡한 생각들을 헹구고 마음속의 때를 씻기 위해 다시 사성암을 찾았다. 진주돗골한마음산악회(회장 윤상규) 회원들과 함께 떠난 오산 사성암 탐방은 산행을 겸해서 했다. 예전에 승용차로 사성암을 찾았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구례군 문척면 동해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계곡을 따라 나 있는 포장된 임도는 처음부터 발걸음을 팍팍하게 했지만, 사성암으로 가는 산능선 탐방로로 접어들자, 소나무 갈비들이 융단처럼 깔려 있어 걷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2시간을 산행한 뒤 닿은 오산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사방이 모두 절경이었다. 부드러운 손길로 들녘을 다독이며 구례에서 하동으로 흘러가는 섬진강의 따사로운 풍경과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지리산 능선의 장엄한 모습, 지리산이 섬진강을 굽어보며 중생들에게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길을 설법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산(鰲山)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면 바로 사성암이다. 두 시간 동안의 산행을 해서 그런지, 육체적인 피로는 있었지만 마음은 잡티 하나 없이 맑아져 있었다. 승용차를 타고 사성암을 탐방하는 것이 관광에 가깝다면, 2시간 땀을 흘리며 산행을 한 뒤 세속의 때를 땀으로 씻어낸 뒤 사성암을 탐방하는 것은 하나의 수행이다. 그래서일까, 절에 닿은 필자의 마음은 이미 경건해져 있었다. 암벽 위에다 세워놓은 사성암은 원래 오산암이라 불렀는데, 의상대사,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 등 네 성인이 수도한 곳이라 하여 사성암(四聖庵)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사성암을 바라보는 경관도 빼어나고, 사성암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또한 장관이다. 옛날부터 오산 사성암에 있는 바위들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의 바위와 비슷하다고 해서 소금강이라까지 불렸는데, 진각국사가 참선했다는 좌선대, 해질 무렵의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낙조대, 풍월대, 신선대 등 사성암 12비경을 하나하나 감상하는 것도 탐방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바위들끼리 모여앉아 참선하는 곳

도선국사가 참선했다는 도선굴, 허리를 숙여 굴속으로 들어가 잠깐 앉아 있으면 바깥에서 나는 모든 소리들이 차단된 것처럼 고요했다. 이런 곳에서 오랜 세월 참선을 하면 저절로 득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탐방객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이 소원바위 앞이다. 소망지(所望紙)에다 저마다의 소원을 적어서 소원바위 앞에 쳐놓은 줄에다 걸어둔 뒤 소원을 빌었다. 소원은 어제와 오늘의 ‘나’가 아닌, 내일의 ‘나’를 위한 기원이다. 옛날 민중들의 과거와 현재는 고난의 삶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 민중들은 자신의 미래만큼은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삶이 전개되길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남녀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미래의 ‘나’의 삶이 보다 복된 삶이기를 기원하고 있다. 필자도 줄을 서서 한참이나 기다린 뒤 내일의 ‘나’를 기원하기도 했다.

바위와 바위 틈, 좁은 터에다 지장전, 신왕전, 나한전 등을 아담하게 지어놓은 품새가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큰절보다 더 절답게 보이고 성스럽게 보였다. 옹기종기 작은 바위들끼리 모여앉아 참선을 하고 있는 좌선바위와 수령 800년이나 되는 귀목나무(느티나무)를 지나 사성암의 얼굴인 약사전(유리광전)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약사전은 지금 한창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성암을 가장 아름다운 암자로 손꼽히게 한 약사전과 마애약사여래불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무척 안타까웠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는 것만이 어찌 보는 것이겠는가? 필자는 옛날의 기억을 더듬어 암벽에 아슬아슬 붙어있는 약사전과 마애약사여래불을 떠올려 보았다.



 
 


원효대사가 선정에 들어가 손톱으로 암벽에다 새겼다는 마애약사여래불은 지금도 사성암의 불가사의한 전설로 남아있다. 왼손에는 중생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기 위한 약사발을 들고 있는 것이 다른 마애불과는 사뭇 다르다. 귀족들만 신봉했던 불교를 일반 민중들에게 포교하여, 민중들의 아픔을 위무하고자 했던 원효대사의 애민 사상이 잘 담겨있는 불상이다. 핍박받는 민중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고자 했던 원효대사의 거룩한 뜻이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전해지고 있는 듯하다.



사색과 수행의 공간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성암, 필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게 왠지 불안하다. 종교적 성지를 하나의 관광지로만 인식된다면 종교의 본래 기능이 퇴색되기 때문이다. 승용차를 타고 쉽게 사성암에 와서 적당히 불전함에다 돈을 넣고 자신들의 소원을 빌고 간다면 그것은 어쩌면 미신에 가깝다. 고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해서 어제보다 더 참된 ‘나’를 만들어가게 하는 것이 종교의 본디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관광지로서의 사성암이 아니라 마음 속 잡티를 땀으로 씻은 뒤 사성암의 절경과 굽어보는 풍경에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면서 수행처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사성암에 있는 수많은 바위들을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그것은 그냥 바위가 아니다. 조금만 각도를 바꿔서 보거나 몸을 낮춰서 바라보면 바위들이 모두 부처님으로 보인다. 바위도 수행하면 부처의 형상으로 바뀌는데, 사람도 헛된 욕심을 버리고 참되게 살아간다면 마음속 불성(佛性)이 살아나 좀 더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땀에 흠뻑 젖은 채 내려오는 길, 필자의 몸은 무척 가벼워져 있었다.



박종현·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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