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여! 바다물을 끓이려 하지 마라
청년들이여! 바다물을 끓이려 하지 마라
  • 경남일보
  • 승인 2019.03.2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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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명제는 당시에는 혁명적이었다. 그리스 철학과 중세 신학이 주류이던 당시 영국의 고루한 지식인 사회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를 인간의 이성을 통해 이해하고, 그 능력의 가치를 통찰한 근대적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베이컨이 평생을 통해 익히려 했던 ‘아는 것’의 의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의미했고, 이는 당시 존재했던 지식의 양이 그만큼 적었음을 의미한다.

중세시대 유럽의 대표적인 도서관이었던 스위스 장크르-갈렌의 베네딕트 수도원 도서관의 9세기 후반 총 소장서적은 500권 정도였다. 인쇄본 서적이 등장하기 이전 15세기 영국에서 가장 많은 장서를 보유했다는 캔터베리 대성당의 도서관 장서가 2000권이었고, 케임브리지대 도서관도 300권에 불과했다. 서양 최대의 도서관들이 가진 장서가 지금 기준으로 놀라울 만큼 적은 이유는 비싼 책값 때문이었다. 책을 구경하기도 어려우니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도 극소수였던 시대다. 지금은 PC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연결해 사실상 전 세계의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다만, 특정 개인이나 조직이 지식 전체를 습득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20세기를 대표하는 르네상스적 지식인으로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 철학, 미학, 역사학, 문학 등 다방면을 넘나들었던 천재이지만 오늘날 축적된 지식의 극히 일부만을 섭렵할 수 있었다.

‘바닷물을 끓이려 하지 마라’는 경구가 있다. 이것은 ‘해답 없는 문제를 풀기 위한 불필요한 노력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대략적 범위와 정확한 수치가 필요한 경우를 구분하라’, ‘모든 자료를 찾고 결론을 내리려 하면 어떤 결론도 나지 않는다’, ‘자료의 중요성과 현실적 기대 수준을 먼저 설정하라’ 등의 의미다.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며 범위도 넓고 축적된 콘텐츠도 많은 학문의 범위를 바다에 비유할 수 있다. 광대한 바다와 같은 학문을 넓고 깊게 접근하는 것은 평생을 책만 보는 전공자도 불가능한데 하물며 학문적 교양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일반인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20대의 젊은 시절에는 ‘바닷물이라도 끓여 보겠다’는 설익은 의욕을 무기 삼아 달려들겠지만 직업을 가진 30~40대 입장에서는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청년들의 학문에 대한 접근은 ‘바닷물을 끓이려 하지 말고’ 자신이 필요하고 흥미로운 분야를 중심으로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자신의 삶에서 실용, 교양, 취미 등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흥미를 느끼고 접근하기 쉬운 영역에서 접하면 된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아무리 학문을 교양으로 접하고자 하는 의욕이 넘쳐도 어차피 모든 영역을 섭렵하기는 어렵다. 철학, 역사, 문학, 예술 등의 분야를 섭렵하는 르네상스적 지식은 전문가의 영역에서도 사실상 불가능한 경지이다.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접하다 보면 주변 영역으로 관심이 확장되고 부분적 지식이 연결되어 통합되면서 자신의 관점이 생겨나게 된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공부할 때도 취미로 역사를 대하며 생각을 정리해 체계를 잡을 수 있고, 당대의 문화, 예술, 세계관에도 일정한 관심이 생겨 자연스럽게 지식이 인접 분야로 확장된다. 또 역사를 그 자체로 읽고 지식을 얻기도 하지만 핵심은 역사를 통한 인간의 삶에 대한 깨달음이다. 깨달음의 기반은 개인적 삶과 사회생활을 통한 경험이고, 경험이 역사를 통해 얻은 지식과 만나 숙성되면 이해의 폭이 확장되는 것이다.
 
김진석교수
김진석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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