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라 빌레트’ 진양호공원
진주의 ‘라 빌레트’ 진양호공원
  • 경남일보
  • 승인 2019.03.2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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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왕이 모든 국가 권력을 가지고 백성 위에 군림하던 때를 절대주의 시대라 한다. 이는 16세기 경 유럽의 봉건 제도가 무너진 후 근대사회가 오기 전까지 중간에 있었던 정치 형태였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로는 프랑스의 군주였던 태양왕 루이 14세를 들 수 있다. 그는 ‘짐이 곧 국가다’라는 유명한 선언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구축하였다. 이러한 힘을 보이기 위해 지은 도시가 바로 파리 인근에 있는 베르사유 궁전이다. 건축물 자체도 그렇지만 그 앞에 있는 공원은 화려하고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공원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정 대칭의 축은 왕궁의 중앙에서 시작하여 도시 전체의 중심을 관통함으로서 나라가 누구의 발아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궁궐 뒤쪽으로 있는 광활한 공원은 왕과 귀족들을 위한 전용 사냥터였다. 이러한 호사스러운 삶을 유지하게 만든 바탕에는 백성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었다.

이처럼 권력을 인공적으로 강조한 바로크 양식의 공원 다음에 온 사조는 고전주의이다. 이는 한마디로 자연식 정원이라 할 수 있는데, 음악으로 말하자면 ‘전원’이라는 부제를 가진 베토벤의 6번 교향곡을 떠 올리면 된다. 신선한 공기를 내뿜어 주는 울창한 숲, 졸졸 흐르는 맑은 시냇물, 산보하기에 적절한 나지막한 언덕 그리고 정원 사이에 간간히 펼쳐져 있는 예술 조각품과 정자들이 고전주의 공원을 만드는 기본 요소들이다. 이곳은 바로크 정원과는 달리 일반 시민들도 마음껏 출입 할 수가 있어서 큰 인기를 모았다. 당시는 산업혁명과 도시과밀화로 인해 주거 환경이 심각하게 나빠졌던 때라 도시민의 치유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이 공원은 근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조성되었는데, 그 유명한 뉴욕의 센트럴 파크나 인천송도신도시의 센트럴파크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21세기를 지향하는 새로운 개념의 공원은 1980년대에 공교롭게도 바로크 공원이 시작되었던 프랑스 파리에 탄생했다. 도시 동북쪽에 있는 ‘라 빌레트’는 원래 도축장으로 쓰이던 땅이었는데, 도시 재생사업을 통하여 새로운 공간으로 태어났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이전의 공원이 휴식과 휴양의 성격을 가졌던 반면에, 라 빌레트는 문화를 생산하며 창조하는 미래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부지 전체에 과학박물관, 복합공연장, 안내소, 식당, 놀이집, 스튜디오, 체험관, 게임룸 등을 설치했다. 이것들을 연결하는 사이공간에서는 방문객이 산책하고 축제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계획하였다. 또한 이를 주변의 연주회장, 예술학교, 음악도시 등과 연계하여 총체적인 문화발전소의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이 뿐 아니라 주변에 중국이민자가 많이 사는 점을 배려하여 이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원래 있었던 수로도 주요 테마로 살려 과거의 흔적도 지속하게 했다. 이로서 이전에는 백성을 착취하여 만들었던 공원이 이제는 시민의 미래 삶을 창조하고 설계하는 곳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는 오늘날 전 세계에 퍼져 나가 문화, 생태, 역사 등을 테마로 하는 다양한 창조적 개념의 공원이 생겨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진양호 공원 개발에 있어서도 이러한 점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만약 어디에나 찾아 볼 수 있는 단순한 놀이, 여가, 휴식, 자연 등의 개념에만 그친다면, 별 매력이 없는 구시대적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가 있다. 라 빌레트에서 보는 것처럼 문화와 미래 삶을 창출하고 시민의 삶과 희망을 담아내는 창의적인 구상을 하여야만 할 것이다. 또한 청정 수자원과 수달 보호 구역 등의 생태적 이미지와 진주가 가지는 찬란한 지역적 역사와 특징이 묻어나는 활기 있는 현대적 도시공원으로 조성해야 그 진정한 가치가 살아나지 않을까 싶다.

 
최만진 교수
최만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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