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상황, 다른 생각
같은 상황, 다른 생각
  • 경남일보
  • 승인 2019.04.0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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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웅(전 진주문화원 부원장)
이무웅
이무웅

날씨 좋은 어느 날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를 비롯해 몇 명만 서 있으려니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중에 앉은 손님이 킬킬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마치 나의 흉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불안하기까지 했다. 바지의 지퍼가 제대로 잠겨 있는지를 살며시 만져보기도 했다. 승객들이 마치 입사 면접관들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도로에 강아지라도 뛰어들었는지 앞 차량이 섰는지 몰라도 갑자기 버스가 급정거했다. 그 바람에 나와 함께 서 있는 사람이 함께 넘어지면서 앉아 있던 젊은 여인의 무릎을 덮쳤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준비를 하면서 화장을 고치고 있던 그 여인은 그 충격으로 연지(립스틱)가 코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여인의 얼굴이 엉망이 돼 마치 코피를 흘리는 것 같았다. 그 장면을 정확하게 본 나로서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같이 넘어진 사람과 함께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지만 혼자 속으로 웃었다. ‘인간들이 참으로 나빠지면 남을 다치게 해서 기뻐하는 것 외에는 흥미가 없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생각났다. 비슷한 말로 ‘남의 집 불 구경 않는 군자도 없다’는 말도 생각났다.

당황 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두고 웃음으로 대신한 것을 후회하는 순간, “여보, 운전 좀 잘하시오”라며 승객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운전기사는 들었는지 듣고도 모른 체 하는 것인지 말없이 운전에만 열중했다. 앉아 있던 승객들은 급정거의 충격으로 그 여인이 코피를 흘리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같은 상황인데도 보는 시각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목격한 셈이다. 나는 코앞에서 봤기 때문에 정확하게 연지가 코에 박힌 것을 알았고, 옆에 있는 승객들은 차의 급정거로 어디에 부딪쳐 코피가 난 것으로 본 것이다.

요즘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전후 사정을 잘 알지 못하고 상대방을 타박하면서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말들은 상대에게 비수처럼 꽂혀 상처가 되기 일쑤다. 정치권이 더 심하다. 정치인들이 주고받는 언쟁은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언제부터 세상이 이렇게 무섭게 바뀌었는지 돌이켜보는 것도 숨 가쁘다. 말 한마디를 할 때도 전후 사정과 상황을 잘 파악한 뒤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큰소리치는 일이다.

이무웅(전 진주문화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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