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시호(거창교육청 장학사·교육학박사)
합천학살사건은 3·1운동 때 일본경찰이 합천군내 여러 곳의 시위 군중을 학살한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한국근현대사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1919년 3월 18일에 강양면(江陽面, 현 합천읍) 시장에 모여 있던 군중을 일본경찰이 철봉과 총검으로 공격, 3명이 살해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 3월 19일에는 대정면(大井面, 현 대병면)의 시위군중은 고현(古縣) 시장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행진을 벌였다. 일본경찰이 이들을 공격하여 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5명을 체포해 갔다. 3월 22일에는 상백(上栢)·백산(柏山, 상백과 백산을 합친 현 쌍백면)·가회(佳會)·삼가(三嘉) 등 4개 면의 군중 3만여 명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평화적 시위를 할 것을 관헌에 통고했다. 그러나 일본경찰은 시위 군중에 총을 난사, 42명을 학살하고 100여 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같은 날 초계면(草溪面)에서도 유림·학생 등 8000여 명이 만세운동을 일으켜 일경에게 5명이 피살되고 수십 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렇듯 한 사건에 대한 역사적 기술이 많이 달라 제대로 조명할 필요가 있겠다. 대표적 예로 삼가시위에서 42명이 학살되었지만 현재까지 14명의 열사만이 밝혀졌고 독립기념관의 자료에 의하면 삼가금리 지역에서 순국한 열사는 16명이며 중복되는 4명을 제외하면 26명으로 늘어난다. 합천지역은 8명과 초계지역은 9명의 열사가 추가된다.
따라서 올해 3·1의거 100주년을 맞아 경남도와 합천군은 학술대회를 열어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기 바란다. 아울러 경남지역의 3·1운동을 기념할 역사관건립도 뒤따라야 한다.
둘째 합천군은 3·1운동 기념행사를 5년 주기로 19일은 합천, 20일은 대병, 21일은 초계, 22일은 야로, 23일은 삼가 순서로 개최하면 행정낭비를 줄이면서 그 뜻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현명한 판단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차시호(거창교육청 장학사·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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