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지처(糟糠之妻)
조강지처(糟糠之妻)
  • 경남일보
  • 승인 2019.04.0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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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홍(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
임규홍 교수
임규홍 교수

조강지처(糟糠之妻)란 말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후한서(後漢書)송홍편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 광무제가 남편을 잃고 외로워하는 누님 호양공주(湖陽公主)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려고 했다. 소문으로 듣기에 송홍이란 사람이 인품이 매우 훌륭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광무제가 어느 날 송홍에게 자기 누님을 처로 받아들일 수 없겠는가하고 물었다. 송홍이 답하기를 ‘신문(臣聞) 빈천지교 불가망(貧賤之交不可忘), 조강지처 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 이라고 하면서 한 마디로 거절했다고 한다. ‘신은 예부터 가난할 때 사귄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고, 가난할 때 같이한 처는 내쫓아서는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라는 뜻이다. 조강지처란 말은 여기서 온 말이다. 지게미와 쌀겨로 남편과 함께 가난을 이겨낸 처는 결코 내쫓을 수 없다는 말이다. 비록 부부가 어렵게 살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희로애락을 같이 한 아내를 어찌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때로 혼자 있고 싶은 적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남편으로, 아내로 곁에 있을 때 말이다. 요즘 졸혼이니, 황혼이혼이니 하는 말들을 쉽게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이 들어 인기척 하나 없는 텅 빈집, 빈방에 혼자 들어가는 외로움을 겪어 보았는가. 몸 져 누웠을 때 물 한잔 떠 줄 사람 없는 외로움을 겪어보았는가. 말하고 싶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고 일을 하더라도 어디 진심으로 의논할 데가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사람이 혼자 잘 살아낼 수 있다고 호기로, 때로는 오기로 큰 소리 치지만 생각만큼 그리 쉽지는 않다.

인간은 환상으로, 때로는 착각으로 사는 것 같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처럼 남의 아내가, 남의 남편이 자기 아내나 남편보다 더 잘하는 것 같이 보인다. 이 세상에 온전한 부부는 결코 없다. 그걸 아예 기대할 수도, 기대해서도 안 된다. 서로가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다름을 틀림이나 나쁨으로 생각하기보다 장점이나 감사로 바라보고 살아갈 수는 없을까. 이왕 부부로 한 평생 같이 살아갈 작정이면 멋있게, 서로 잘해주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누가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다. 우리 인간은 모두 결점 투성이다.

우리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 짧고 빠르게 지나간다. 늙어 가면 점점 몸도 군데군데 허물어지고 마음도 약해져 간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것이 바로 인간이 아니던가. 같이 늙어가는 가련한 아내를, 남편을 서로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면서 살아가면 어떨지. 조강지처만한 사람은 이 땅에 없다.

 

임규홍(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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