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GP, 화장실 갈 때 마음을 잊어선 안 된다
GGP, 화장실 갈 때 마음을 잊어선 안 된다
  • 문병기
  • 승인 2019.04.03 16: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병기(서부취재본부장)
‘화장실 갈 때 맘과 나올 때 맘이 다르다’는 말이 있다. 약속을 잘 지키지 않거나 목적을 달성한 뒤엔 언제 봤냐는 식으로 등을 돌리는 경우를 빗대 이런 표현을 쓴다. 자신이 아쉬울 때는 목숨이라도 내어줄 듯 매달리다가, 정작 원하는 것을 얻은 뒤에는 나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이 부류에 해당된다. 이들의 특징은 자신들이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거짓이 들통나도 반성은커녕 부끄러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고 상대를 설득하려 한다. 한 마디로 전형적인 이중인격자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이 사천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설마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현실로 다가온다. 여론의 주인공은 고성그린파워(GGP)이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남동발전과 SK건설 등이 지분참여를 통해 만든 법인으로, 2015년부터 삼천포화력 인근에 또 다른 민자 발전소를 건립하고 있다. 왜 이들이 지역의 ‘뜨거운 감자’가 됐을까. 옛 삼천포지역민들은 발전소란 말만 들어도 치를 떤다. 수십 년 간 삼천포화력에서 발생되는 환경문제와 대형 차량들로 인해 말 못할 고통을 참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다시 새로운 발전소를 건설한다하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지역민들이 더 이상은 안 된다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GGP는 난감했다. 공사를 하려면 대형차량들의 운행은 필수이고, 가장 근거리인 옛 삼천포 간선도로를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감정이 격해진 시민들을 무시한 채, 그냥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화장실이 급했던 GGP는 교묘하게 해결 방안을 찾았다. 시내를 통과하지 않는 우회도로를 개설하겠다며 당근을 내밀었다. 의심스러웠지만 시민들은 그 약속을 믿었다.

하지만 GGP는 모두를 속였다. 화장실을 갔다 오자 마음이 변한 것이다. 지금껏 12차례 진행된 실무협의에서 온갖 변명들만 늘어놓고 있다. 오히려 말도 안 되는 법적근거를 들며 당시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천시가 보상비 수 백 억원을 낼 테니 공사비만 부담하라고 해도 묵묵부답이다. 이렇게 되자 사천이 발칵 뒤집혔다. 사천시와 시의회는 물론이고 12만 시민들의 원성이 GGP를 향하고 있다. 사천시의회는 우회도로 개설 촉구 결의문 채택에 이어 피켓시위를 벌이면서 GGP측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시민들도 대규모 규탄집회를 개최하는 등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번에는 끝을 보자며 물리적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들을 분노케 한 것은 GGP측의 태도이다. 약속 이행을 못했으면 최소한의 부끄러움은 알아야 한다. 잘못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죄할 수 있는 양심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변명과 시간끌기로 일관하니 모두의 공분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GGP는 처음부터 우회도로를 개설할 의지가 없었는지 모른다. 반대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던진 미끼를, 순진한 시민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덥석 물고 있었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제라도 GGP의 속내를 알았다는 것이다.

두 번은 속지 않는다며, 이번에는 끝을 보겠다고 나서자 GGP는 한 발 물러나는 모양새다. 국회의원의 강요(?)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매달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합의서란 것을 작성해 시민 앞에 공개했다. 하지만 급조된 합의서에는 알맹이도, 진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비난만 쏟아지고 있다. GGP가 명심할 것은 이런 합의서가 아니라 진정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생을 위해 신뢰를 회복하고 기업의 도리를 다하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