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3월 29일 금요일 6면 개양역
1991년 3월 29일 금요일 6면 개양역
  • 박은정
  • 승인 2019.04.03 2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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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삼천포로 빠지고 싶다’
 
 


‘잘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사천사람들에게는 ‘지역 비하문구’라고 해서 금기시 되는 말이었다. 각종 언론이나 방송 등을 통해 이 문구가 사용되어진 걸 아는 순간 사천시에서는 정정보도와 사과를 요구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2010년 방송됐던 SBS 드라마 ‘신기생뎐’에서 출연자 중 한사람이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대사를 했을 때였다. 사천시는 적각 방송국에 지명 비하대사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6개월 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방송하면서 “왜 자꾸 삼천포로 빠져”라는 표현이 나왔다.

이에 당시 공중부양으로 유명했던 지역의 강기갑국회의원이 공개서한을 보내 사과를 요구하자 방송국에서는 재발방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또한 SBS는 드라마작가협회에 지역 비하문구를 사용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 생길때마다 사천시는 방송사에 항의서한을 보낸게 2001년부터 8차례나 된다고 한다.

말의 배경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그중 ‘개양역’이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옛날 진삼선의 출발점이었던 개양역은 삼천포역으로 가는 열차의 효율적인 운행을 위해 부산에서 개양역까지 순천으로 가는 경전선 열차 뒤쪽에서 거꾸로 연결돼 운행했는데 경전선 열차와 진삼선 열차 사이에 차단막이 없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했다. 열차가 개양역에 들어오면 진삼선 열차와 분리되어 제 갈길로 가는데 그때 진삼선에 있다가 순천방향으로 가는 승객들이 미처 경전선 열차로 옮겨타지 못해 ‘삼천포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당시 열차의 운행시간대는 주로 새벽시간대여서 객차를 옮겨타지 못한 승객들은 꼼짝없이 삼천포항의 새벽불빛만 하염없이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 개양역이 사라졌다.

1925년 마산에서 진주를 오가던 경남선이라는 철길과 함께 문을 연 개양역. 1953년 개양에서 사천을 잇은 사천선이 개통되고 이후에 사천선이 진삼선으로 연장됐다.

2003년 새 역사가 지어지고 운영됐지만 2010년 무배치간이역으로 전환됐다가 2012년 10월 신진주역사의 개통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00년 가까이 지명을 간직했던 개양역. 그런데 진주시 어디에도 개양이 없다. 그저 ‘개양오거리’, ‘개양’ 같은 이름만 존재할 뿐이다.

지금의 가좌동 일대를 일컫는 개양은 구한말 진양군 정촌면 소속이었던 개양동, 장좌동, 신촌동을 통합하여 ‘가좌리’라는 행정구역이 됐다고 한다. 그러니까 구한말까지 존재했던 ‘개양동’의 지명을 따서 1925년 경남선을 개통할 때 기차역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상전벽해’라고 지금은 신진주역세권의 개발로 개양역 터와 그 부근일대는 고층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지금도 한창 개발 중에 있다.

진작에 폐선 된 진삼선은 철길마저 30여년 전 폐쇄되고 현재는 도로로 탈바꿈했지만 아마도 60대 이상 어르신들은 추억을 떠올릴 지도 모른다. 이젠 빠지고 싶어도 못 빠지는 삼천포를….

박은정 편집디자이너


비행기도 KTX도 달려와 머무는데
낙동강을 지나
스무남 개 간이역을 이별하고
진주역 못가서 닿는 개양역
캄캄한 밤에 꿈꾸듯 뒤돌아보던
경전선의 꿈은 서럽습니다.
새끼줄처럼 뻗어나간 고향 철길로
단내 나는 옥수수 밭을 나비로 따라가면
등불 켠 내 어린 기억 속으로
천천히 사라지던 기적 소리 하나
주름진 밭고랑 너머 버드내 공동묘지
선영이 있는 고향마을에
아버지의 푸른 새벽까치가 날마다 와서 울 때
오늘도 달려보는 나의 완행열차여
기다리지 않는 내 고향 사천에는
바람결에 쏟아지는 금목서 향기만
어머니의 꿈을 받아들고
동구 밖을 맨발로 달려옵니다.

-조정애 ‘개양역’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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