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여성칼럼]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04.0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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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진주여성회 대표)
또 한 분의 ‘위안부’ 할머니께서 별이 되셨다. 이제 내가 ‘위안부’라고 밝히신 21분의 증언자가 생존해 계신다. 그들의 죽음이 이렇게 안타까운 것은 일본군 성노예로 강제연행되고 억압된 삶을 사셨고 간신히 살아 돌아오셨어도 고국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사죄와 배상은커녕 때때로 터져 나오는 일본 정치인들의 막말에 그들의 존재마저도 부정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증언으로 인해 진실은 묻히지 않았고 그 피해자들 옆에서 함께 정의를 외치는 이들이 생겼다. 피해자였던 할머니들이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고,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수요일마다 거리에 서셨고 함께하는 미래 세대들이 기림비들(평화의 소녀상)을 전국 곳곳에 세우고 있으며 할머니들을 기억하며 뜻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강간이 식민지 지배를 받아서, 전쟁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일어난 과거의 특수한 일이 아니다.

요즘 언론의 관심과 집중을 받고 있는 김학의 사건, 버닝썬 승리사건, 장자연 사건이 더 실체가 드러나야겠지만 공통 키워드는 여성을 강간하기 위해 사용한 물뽕과 마약, 권력을 악용한 성접대다. 그들의 먹잇감이 된 여성들은 강제로 그들의 욕망을 위해 끌려갔고 이용되고 버려졌다. 피해자는 피해사실은 인정받지도 못했고 진실을 밝혀내지도 알리지도 못했다. 도리어 동영상이 유포될까봐 전전긍긍해야 했다. 특히 장자연 사건의 경우는 끊임없이 사건이 터져 나왔지만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의 손을 잡아준 용기 있는 이들이 있었기에 사건은 다시 수면위로 올라왔다. 이제 이 진실을 침몰 시킬 수 없다.

왜 약자의 성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했던 것인가? 아무렇지도 않게 강간을 도모하는 것이 문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권의식이 있는 것일까? 예전에 한 정치인이 돼지발정제를 먹여 강간을 시도한 친구의 이야기를 자서전에 쓰면서 문제가 되었었다. 강간을 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발정제를 준비한 것은 결코 젊은 시절 치기가 아닌 범죄였다. 음료수에 물뽕이라는 흥분제를 넣어 의식 없는 여자들을 강간하고 동영상을 찍는 것 또한 범죄다. 그것은 돈을 벌기 위해 일상화된 강간문화가 아니다. 지금은 인간이 인간에게 폭력으로 맞서는 전쟁시기도 아닌 21세기 민주주의 사회가 아닌가? 우리는 인권이 살아 있는 사회, 일상이 좀 더 안전한 사회이기를 원한다.

해방이후 ‘위안부’들이 돌아왔을 때 그들은 몸을 버린 여자라는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 때문에 고향에 살지 못하고 떠돌거나 정상적인 혼인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팔았다는 망발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정을 이룬 이들 중에는 아직도 ‘위안부’였음을 숨기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명백한 2차가해였다. 그들에게는 “니 잘못이 아니야”하며 안아줄 곳이 가족이 필요했다. 함께 눈물 흘리며 공감해 줄 이웃이 필요했다. 왜 그랬냐며 싸워줄 국가가 필요했다. 김학의 사건, 버닝썬 승리사건, 장자연 사건 역시 사건의 핵심을 보기보다는 피해자들에게만 초점을 맞춰 신상을 털고 행위관련 동영상 찾기를 하고 정보인양 돌려보기까지 한다. 이것 역시 2차가해다. 사건이 제대로 조사되고 처벌되는 것에 관심이 필요한 것이지 피해자 개인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2차가해일 뿐이다. 성폭력사건을 대함에 있어 좀 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하다.

거리에서 수요일마다 목이 쉬도록 외치던 할머니들이 바라던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고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은 사람이 사람을 존중할 때 완성된다. 그런 사회는 권력과 힘을 지닌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를 바라는 아주 평범한 우리가 진실을 외면하지 않을 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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