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문화 수도에서 띄우는 아침차담(3)
차 문화 수도에서 띄우는 아침차담(3)
  • 경남일보
  • 승인 2019.04.0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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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여황(한국차문화수도진주추진위원회 이사)
◇차인(茶人)

‘차(茶)’라는 글자를 대하면 차를 마시지 않았을 때에도 넉넉한 웃음으로 무언가에 열중하는 도인(道人)의 모습이 떠오른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춘 차기와 자리에서 오롯이 차를 위해 정좌하고 마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차 자리에 앉아 다과를 먹으며 심부름도 하면서 많은 분들의 호와 호칭들을 들어 왔다. ‘효당스님, 범부도인, 의재도인, 육천선생, 은초선생, 유당선생, 동전어른, 청사어른, 청남선생, 파성선생, 아인교장’은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그 분들의 당시 모습과 느낌을 어렴풋이나마 되살려보면, 효당스님은 서울에서 손님이 오면 집으로 자주 모시고 오셨고, 손에는 녹차 봉지가 들려 있었다. 넉넉한 모습으로 차를 내시며 다솔사 골방에서 다과를 내어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범부도인은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학을 연상케 하는 호방한 모습으로 술과 차를 함께 즐기셨다. 의재도인은 고고한 품성으로 집에서 가끔 글씨와 그림을 그리시며 열중하시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고, 육천선생은 무언가 깊이 생각하시는 모습과 눈빛이 강하신 분이었던 것 같다. 은초선생은 평안한 모습에서, 유당선생은 강인한 모습에서 근기(根氣)를 느낄 수 있었고, 동전어른은 과자를 자주 사 오시고 다정한 모습으로 재미나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 주셨다. 윗마을에 사셨던 청사어른은 언제나 책과 함께 하시는 분이었으며, 청남어른은 부지런히 무언가를 쉼 없이 하시는 분 같았다. 파성선생은 하동 북천 우체국 옆 다방에서 시화전을 열만큼 예술적인 열정과 감각이 몸에 밴 분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고, 아인 교장은 예술작품에 관심이 많으시며 조각가 문신과 프랑스 분과 함께 집으로 오신 적이 있었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시던 이 분들의 만남에서는 언제나 차 자리가 있었고, 그것이 일상처럼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차 자리에서는 여럿이 있어도 혼자서 마시는 것처럼 ‘신(神)’함을 느끼시는 듯하였다. 이 분들 중 몇 분을 제외하고는 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으셔서 아버지의 황혼기는 쓸쓸하셨다. 지난 일들을 잊으시려는 듯, 차보다 믹스커피를 더 즐겨 드셨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는 차를 드시고 싶으셨는지 차구(茶具)를 챙기셨으나 효당스님이 만들어 놓으신 팔 하나 깊이의 둥근 양철 차통에 손을 넣어 보시더니 그냥, 커피를 드셨다. ‘차가 있는 풍경’ 속에서 무언가 집중하시던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차는 생활의 일부이며,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집중할 수 있는 매개체로 여겨졌다. 그러나 중년이 다 되도록 그런 ‘차가 있는 풍경’들을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래서 차의 도움도 받지 못하였다. 그 때까지는 ‘차(茶)’라는 단어풀이를 풀(草)과 나무(木)속에서 사는 자연인(人)이 즐겨 애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치열한 현실에서 차를 즐긴다는 것이 사치스럽고,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였다. 생활환경이 안정되었을 때, 비로소 차의 존재를 공부하고, 마음을 수양하는 도구로써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차와의 인연과 더불어 강우차회에서 20여년을 생활 해오면서 ‘차인이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삼았다. 풀리지 않는 의문에 실망과 좌절을 거듭하면서 지금은 그냥, 생활의 일부처럼 차를 항상 곁에 두고 마신다. 그러다가 차 맛이 심심하면 커피도 내려 마신다. ‘차가 있는 풍경’이 그립고 좋아서 스스로 차를 내다보니 어느새 ‘차인’이 되어 있는 듯하다.

‘차인’은 이렇게 해서 되는 것인가 보다!



문여황(한국차문화수도진주추진위원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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