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90)소백산 자락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90)소백산 자락길
  • 경남일보
  • 승인 2019.04.0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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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산, 소백산

조선시대 풍수지리학자이면서 예언가였던 남사고는 풍기 땅을 지나면서 소백산을 보고는 말에서 내려 큰절을 하며 ‘소백산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러 명산 중에서 소백산의 기운이 가장 온화하고 아름답다고 평했다. 이런 소백산과 필자 사이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 하나 있다. 40여 년 전 대학초년병 시절, 풍기와 영주 지역에 방언조사를 왔다가 소백산 희방사 아래쪽 계곡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야영을 한 적이 있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불어난 계곡물에 텐트가 20여 미터나 휩쓸려가 죽을 뻔했던 경험이 있다. 그 이후 필자에게 소백산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경외(敬畏)의 대상이었다. 경외에는 두려워하는 마음도 있지만 공경의 마음도 있다. 야영 장소를 잘못 잡은 필자의 실수로 큰 사고를 당할 뻔했지만, ‘사람을 살리는 산’인 소백산의 음덕으로 필자는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 소백산에 대한 두려움은 버리고 공경하는 마음을 안고 국민체력센터(원장 이준기) 명품 걷기클럽인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소백산자락길’을 찾았다.

소백산 자락길은 경북 영주시와 봉화군, 충북 단양군, 강원도 영월군 4개 시군에 걸쳐 있는 명품 걷기힐링길이다. 총 143㎞의 12자락으로 된 둘레길인데 필자가 간 길은 소백산 제1자락길이다. 1자락길은 소수서원이 있는 선비길(3.8㎞), 죽계구곡이 있는 구곡길(3.3㎞), 달밭골이 있는 달밭길(5.5㎞)로 된 12.6㎞의 둘레길인데, 포장된 길이 있는 선비길은 제외하고 구곡길과 달밭길을 트레킹 하기로 했다.



 
 


◇굽이굽이 절경인 죽계 구곡길

고려말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안축이 지은 죽계별곡의 배경이 된 곳이고, 퇴계 이황 선생이 계곡의 절경에 심취해서 흐르는 물소리가 노랫소리 같다고 평하면서 계곡의 굽이에 걸맞은 이름을 지어주면서 죽계구곡이라고 불렀는데, 그 죽계구곡을 따라 조성된 길이라고 해서 구곡길이라고 한다. 골짜기를 따라 나 있는 구곡길은 흙길과 돌길이 번갈아 탐방객들을 반겼고, 필자가 걸어온 숲길을 따라 흘러가는 물이 거울처럼 맑고 투명했다. 어쩌면 저 물이 필자가 살아온 날들을 깨끗이 헹구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힐링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9곡인 이화동에서 1곡인 금당반석까지 굽이굽이 절경마다 세워놓은 안내판과 한 편의 시가 물소리에 흥겨워하던 발걸음을 머물게 했다. 8곡인 관란대를 지나 7곡인 탁영담에 오니 물빛이 더욱 맑아져 있었다. 초나라 굴원이 지은 어부사에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고(탁영濯纓),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겠다(탁족濯足)’란 말에서 따온 이름인 듯한데, 죽계구곡엔 오염원이 없어 항상 맑은 물이 흐르니 갓끈과 마음을 깨끗이 씻을만한 곳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탁영담을 지나자 바로 6곡인 목욕담(沐浴潭)이 나타났다.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갈 만큼 바위와 숲에 가려진 비밀스런 소(沼)였다. 옛 선비들도 물속으로 뛰어들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헹구고 갔을 것 같았다. 온갖 근심을 깨끗이 씻는 곳인 3곡 척수대(滌愁臺)를 지나자, 계곡 옆에 청운대(靑雲臺)라고 새긴 우뚝 솟은 바위가 하나 있었다. 저 청운대를 우러르며 수많은 사람들이 청운의 꿈을 키웠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아홉 굽이의 절경에 맞춰 지어놓은 각각의 이름들이 절묘하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계구곡은 여름철 피서지로 많이 찾고 있는 곳이다. 워낙 시원한 계곡이라 무더위를 느낄 수 없는 곳이라 하여 이 지역 사람들은 무하지경(無夏之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원한 계곡물 소리만 들어도 더위가 가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풍경도 모두 선계인 달밭골

의상대사께서 초가집을 지어놓고 부석사 창건을 구상하셨던 곳이 지금의 초암사다. 초암사에서 시작되는 달밭길. 달밭골 마을로 나 있는 길이라고 해서 붙인 달밭길, 정말 낭만적인 이름이다. 달뙈기만한 밭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달밭골이라 불렀다고는 하나, 산의 옛말이 ‘달’인 걸 보면 국망봉이라는 산(달) 바깥(밭)에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에서 달밭골이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하고 추측해 본다.

구곡길이 봄을 맞이하는 길이라면 달밭길은 겨울을 떠나보내는 길이다. 골이 깊어지자, 산비탈과 길에는 하얗게 쌓인 눈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길가에는 탐방객이 만든 꼬마눈사람이 우리 일행들을 반기고 있었다. 골짜기 계곡물들도 자기들만의 인사법으로 환영해 주었다. 구곡길에서 시작해 달밭골까지 닿기 위해 7개의 다리를 건너야하는데, 마지막 다리를 건너자 마치 속계에서 선계로 접어든 느낌이 들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양달인 순흥쪽 달밭골은 파란 하늘을 이마에 이고 있었다. 폐가처럼 보이는 집들이 옹기종기 몇 채가 남아있었는데, 지금은 두어 집만 사람이 살고 나머지는 다 빈집이라고 한다. 길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수행중(修行中)이라고 써 놓은 통나무 삽작문이 하나 있어 혹시 주인을 만나볼 수 있나하고 들어가 보니, 주인은 없고 햇살만 내려와 앉아 빈집 가득 수행을 하고 있었다. 달밤이면 정말 멋있는 풍경이 연출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달밭재를 넘자,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하얀 눈으로 융단을 깔아놓은 잣나무 숲이 탐방객들을 반겼다. 모두들 한참이나 넋을 놓고 눈 덮인 잣나무숲을 바라보았다. 게걸음으로 비탈진 눈길을 내려오면서 자빠져 엉덩방아를 찧어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의 어깨엔 눈꽃처럼 소담스런 행복이 가득 얹혀 있었다.

풍기쪽에 있는 달밭골, ‘달밭골 나눔터’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장소를 공짜로 빌려주신 주인 내외분의 따뜻한 배려는 달밭골 선경을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뇌리에 남아 있도록 했다. 힘들고 지친 이들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준다는 달밭골 나눔터 ‘자유의 종’,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자유와 평화, 꿈과 사랑을 소망하면서 종을 울렸다. 울긋불긋 등산복을 차려입은 탐방객들의 하산길은 겨울을 이기고 온 봄을 펼쳐놓은 꽃길처럼 화사했다. /박종현(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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