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지묘 경충사
부조지묘 경충사
  • 경남일보
  • 승인 2019.04.0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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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위로는 금오산이요 노량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 도로변에 차를 세우니 안내판이 반긴다. 제목은 정기룡장군 유허지(鄭起龍將軍 遺墟址)이며 이력을 기록했다.

정기룡(1562~1622)장군은 60여 차례나 왜군을 물리친 명장으로 바다에 충무공 이순신, 육지에는 충의공 정기룡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에는 ‘금오산성을 지키고’ 경북 고령에서 대승을 거두고, 삼도수군통제사 겸 경상우도절도사에 올랐다가 통영의 진중에서 순직하였다.

시선이 고정되는 구절이 있다. ‘정기룡 장군’의 표기는 정기룡을 이름으로 하는 사람은 모두 장군이 되니 그 수가 매우 많다. 그러나 ‘장군 정기룡’은 장군 직책을 가진 정기룡으로 한정되니 소수이다. 안내판 내용에 ‘정기룡 충의공’이라 하지 않고 ‘충의공 정기룡’이라 하였는데, 장군 정기룡은 시호를 충의로 하는 위인 중의 한사람이다. 논개 사당 뒤에 쌍충사적비의 장군 제말 역시 충의공이다. 관등성명 순으로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거북을 기단으로 비신 전면에 輔國崇祿大夫行知中樞府事宣武功臣第一等三道水軍統制使忠毅晉陽鄭公不祧之廟景忠祠事蹟碑(보국숭록대부행지중추부사선무공신제일등삼도수군통제사충의진양정공‘부조지묘경충사’사적비)로 되었다.

‘임진란의 맹호’를 찾아왔건만 비문부터 가로 막는다. 不祧之廟는 무슨 뜻이며, 不를 불 또는 부로 읽어야 할까? 평민은 제주의 4대조까지 제사 지내고 신위를 사당에서 묘 앞으로 옮겨 파묻고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그러나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사당에 계속 두면서 기제사를 지낼 수 있다. 그렇다면 ‘부조지묘’는 불천위 신주를 둔 사당이며 不祧之廟景忠祠의 경충사는 장군 정기룡의 불천위 신주를 모신 사당이란 뜻인가!

장군은 진주대첩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한다. 초유사 김성일은 장군을 한후장에 임명하고, 각지에서 모여든 병들과 함께 진주성 외곽에서 수성을 지원토록 하였다. 1592년 10월 9일 2000명의 왜군은 단성으로 진출하여 사방으로 나뉘어 분탕질을 치는데, 장군은 살천장(산청군 시천면)으로 오는 적을 공격하여 쫓아버렸다. 살천장은 의병장 최경회가 김성일의 명을 받아 진주성 전투를 밖에서 응원하기 위해 저장해 둔 군량을 저장하고 있던 곳이었다. 이에 경상우도감사 김성일은 정기룡이 날래며 용맹함이 뛰어나고 여러 차례 전공을 인정하여 관직의 단계를 뛰어 넘어 상주판관으로 임명하였다.

1598년 9월, 조명연합군은 동·중·서, 수로 등 사로(四路)로 편성하여 진격한다. 장군은 사천성 전투에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직함으로 중로의 조선군최고지휘관으로 참전한다. 경기, 황해, 경상우도 병력 2300 명을 동원하고 명나라 병마 3000을 함께 지휘하였다. 28일에는 선봉장이 되어 보병 2000과 기병 1000의 군사를 이끌고 사천읍성을 포위 공격, 수성장 산상충실은 중상을 입은 채로 부하들과 함께 선진리 본진으로 도망갔다.

장군의 경남에서 활동을 재조명하여 고향을 지킨 장군으로 자리매김해야겠다. 1차 진주성 전투에서 살천장에 보관하고 있는 군량미를 지켜 승리하는데 기여하였으며 전공을 인정받아 상주판관이 될 수 있었고, 부인 강씨는 계사년 진주성 함락 시 남강에 몸을 던져 순절했다.

안내판에 ‘금오산성을 지키고’라는 구절에서, 하동 금오산에는 고려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장군이 중심이 되어 노량대첩이 될 수 있게 금오산 중심으로 일본군을 소탕하였는지 밝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수련원이 인근에 있어 청소년들의 견학이 많을 터, 비문을 한글 요약, 부조지묘, 불천위 등 예상되는 내용을 QR코드를 통하여 학습할 수 있게 하여 찾고 싶은 교육장이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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