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생이 쓰던 볼펜 팝니다
서울대생이 쓰던 볼펜 팝니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04.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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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요 있는 물건을 돈 받고 파는 게 뭐가 잘못인데?”

지난 3월 24일 중고거래 카페, 맘 카페 등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서울대생이 쓴 응원의 손편지와 공부할 때 사용한 볼펜 팝니다’라는 판매 홍보 글이 올라와 세간에 물의를 빚었다. 해당 판매는 서울대학교의 한 창업 동아리에서 기획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게시물에는 ‘편지를 쓴 서울대생의 전공은 랜덤으로 높은 등급 컷 기준 선착순으로 판매됩니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편지와 볼펜 묶음의 가격은 7000원이었다.

학벌 상품화를 놓고 논란이 확산되자 해당 동아리는 판매 홍보 게시물을 삭제하고 공식 SNS 계정에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크게 반성한다’는 사과문에 모두가 공감하지는 못했다. “세상에는 그 나이 되도록 변변한 성취 하나 쌓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질풍노도의 시기에 허벅지 찔러 가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교에 온 정도면 자긍심을 가지고 자랑할 만하지 않은가”, “학벌 상품화가 싫으면 대치동 학원가에 가서 서울대 출신이라고 광고하는 강사를 모조리 끌어내시라” 서울대 졸업생이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 쓴 글의 일부다. 이처럼 일부 학생들은 여전히 학벌주의가 대체 왜 문제가 되느냐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은 학벌주의가 왜 문제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에서 학벌은 ‘신앙’이 되었다. 서두에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어떤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허용되려면 그 매매가 사회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지 고려해야 한다. 사회악으로 여겨지는 마약 역시 투약자 외에는 누구에게도 피해주지 않지만,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교육이 입시를 좌우하는 가장 큰 열쇠라 여겨지는 현대 사회에서 학력은 더 이상 개인의 성취라 볼 수만은 없다. 학력은 마치 재산처럼 부모로부터 대물림 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모르고 ‘대체 학벌 상품화가 왜 문제냐?’라는 질문을 하는 것은 수요가 있으니 마약을 팔겠다는 악질 마약상과 다를 바 없는 태도다.

학벌주의는 하루아침에 생긴 현상이 아니다. 지난 2017년 페이스북 페이지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도 위와 비슷한 글이 올라왔다. 학벌주의가 더 심해져서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이 더 대접받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학벌 만능주의에 빠진 대나무숲 글쓴이들은 사람들의 질타에 반성하고 있을까? 아직 못된 생각을 뉘우치지 않았다면 인상적인 한 댓글을 인용해 조언하고 싶다. ‘인생은 야구가 아니다. 아웃까지의 스트라이크 수는 제한이 없어야 한다’ 그렇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끝없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당신은 운 좋게 인생의 1회 말에 홈런을 쳤다. 하지만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며 인생도 마찬가지다. 학벌은, 당신의 인생에 우승을 가져다 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어떤가, ‘경상대’ 학생의 말은 당신에게 와 닿지 않는가?

강소미 경상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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