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단군신화와 그릿(GRIT)
[제언]단군신화와 그릿(GRIT)
  • 경남일보
  • 승인 2019.04.1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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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섭(부산대 교육학과 교수)
김정섭 부산대 교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해가 바뀌면 새로운 마음으로 어떤 일을 추진해보겠다고 다짐한다. 예를 들어, 그 동안 미뤄왔던 일을 하거나 운동부족으로 인해 찐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이나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이들 중 대부분은 근처 산을 오르거나 다이어트를 시작하였으나 며칠을 못가 포기하고 만다. 이처럼 새로 결심한 것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빨리 포기하는 행동을 우리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작심삼일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그릿(GRIT)’이 주목받고 있다. 그릿은 미국의 심리학자인 안젤라 덕워스(Angela Duckworth)가 고안한 개념으로 장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열정과 끈기로 정의된다. 그릿이 높은 사람은 큰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장 모든 힘을 다해 추진하기보다는 작은 일이라도 매일매일 반복하면서 조금씩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비유하자면, 새해부터 운동을 무리하게 시작하여 다음날에는 근육통을 느끼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다음날 또 그 다음날에도 운동을 하는 것이 그릿이다. 그릿과 아주 유사한 개념은 의지력(volition)이다.

우리 민족은 지난 오천년 동안 그릿을 삶의 근간으로 강조해 왔다. 단군신화에 그릿을 실천하는 방법이 담겨져 있다는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단군신화에 따르면, 곰과 호랑이는 사람이 되고 싶어 기도하였고, 이를 안 환웅(하늘의 신)은 이들에게 쑥과 마늘을 주면서 백일 동안 이 두 가지만 먹고 동굴에서 지내면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곰은 이를 잘 지켜 21일 만에 사람이 되어 단군의 어머니가 되었다. 반면, 이를 견디지 못한 호랑이는 동굴 밖으로 뛰쳐나갔고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준 과제가 바로 그릿을 발휘하라는 것이었다. 사람이 된다는 큰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조건이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 먹는 것이었다. 큰 목표에 비해 요구되는 실천은 너무나 단순하고 쉬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을 백일 동안 지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열정과 끈기를 요구하는 힘든 일이다. 배고픔을 참고 견디는 끈기와 어두운 동굴에서 기존의 동물적 습성을 버리고 인간이 되고 싶은 열정을 잃지 않고 계속 간직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서 쑥과 마늘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면 더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쑥은 다년초 약재이며 봄부터 가을까지 무성하게 자라며 쉽게 뿌리 뽑히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즉, 쑥은 왕성한 열정과 끈기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마늘은 가을에 심겨져서 봄에 수확되는 농작물이다. 우리나라의 토종 작물 중 겨울을 이겨내는 것이 몇 가지 안 되는 것을 감안할 때 마늘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강한 인내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쑥과 마늘을 합치면 일 년이 되며, 열정, 끈기, 인내력, 참을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백일’이라는 조건은 인간의 행동이 학습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임이 과학적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다. 행동주의 학습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새로운 행동을 획득하는데 대략 3개월이 걸린다. 백일은 3개월이 조금 더 되며 인간이 새로운 행동을 완전히 습득하는데 충분한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단군신화는 한 사람이 새로운 인간으로 재탄생하려면 곰이 쑥과 마늘을 먹었던 것처럼 아주 단순한 것을 백일 동안 반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지혜는 그릿에서 강조하는 바와 같다. 따라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그릿을 실천하였고 그 방법도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긴 시간동안 수많은 침략을 받고도 꿋꿋이 이겨낸 역사에서 그릿의 힘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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