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에 도전하는 경상대 산악회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에 도전하는 경상대 산악회
  • 백지영
  • 승인 2019.04.11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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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 개교 70주년, 산악회 창립 50주년 맞아
침체된 산악문화 부흥 바라며 10년의 도전 나서
신입생이 70대 선배에게도 ‘형’…끈끈한 결속력

“침체한 산악 문화를 7대륙 최고봉 등정이라는 계기를 통해 부활시키고 싶습니다.”

경상대학교 개교 70주년, 산악회 동아리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세계 7대륙 최고봉 원정대’를 꾸린 정철경(48) 경상대학교 산악회 OB사무국장은 장장 10년에 걸친 장대한 도전을 기획한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경상대학교 산악회는 2011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를 시작으로 2013년 유럽 엘브루즈(5642m), 2015년 북아메리카 디날리(매킨리, 6194m), 2018년 아시아 에베레스트(8848m), 2019년 남아메리카 아콩카과(6962m)를 차례로 정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내년으로 예정된 오세아니아 코지어스코(2228m)와 2021년으로 계획한 남극 빈슨 메시프(4897m) 단 2봉우리뿐이다.

정 사무국장은 “사실 7대륙 최고봉은 상징적인 것”이라며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나 오세아니아 코지어스코 같은 곳은 그렇게 등반성이 있는 코스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원정 대장정에 높고 험준한 산뿐만 아니라 트래킹 삼아 누구나 갈 수 있는 곳도 기획한 것은 모두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여정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랜 준비 기간이 소요되는 히말라야를 부담스러워하는 회원도 비교적 쉬운 원정에는 가족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는 등 한동안 침체해 있던 지역 산악문화에도 활력이 돌고 있다.
구름보다 높은 엘브루즈 정상에서 산악회기를 펼쳐 들고.
구름보다 높은 엘브루즈 정상에서 산악회기를 펼쳐 들고.


8명의 대원이 함께 떠난 2013년 엘부르즈행에는 75학번부터 막내 11학번까지 36기의 격차가 나는 선·후배가 함께했다.

2021년이면 창립 50주년을 맞는 경상대 산악회는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도 이제는 70대가 된 1기 선배에게 ‘어르신’ 대신 ‘형’이라고 부를 만큼 탄탄한 결속력을 자랑한다.

처음에는 할아버지뻘 되는 선배에게 ‘형’이라 부르는 걸 어색해하던 신입생도 ‘산’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나누다 보면 금방 스스럼없게 지내게 된다.

YB(재학생)와 OB(졸업생)가 주기적으로 합동 등반을 진행하고, 함께 산을 오를 수 없을 때는 OB가 고기나 술을 사들고 기다리기도 한다.

23살차이 나는 ‘형’과 함께 아콩카과에 오른 조우영(23) 학생은 “우리 대학 모든 동아리 통틀어 산악회가 회원끼리 가장 끈끈하다”며 “OB 형들이 베풀어준 것을 저 역시 OB가 되면 YB들에게 전하겠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경상대 산악회는 7번에 걸친 해외 원정 경비 대부분을 내부적으로 조달했다. 대학 측이나 외부 스폰서에서 일부 지원해 주기도 했지만 9할은 후배들의 도전을 응원하는 OB들이 십시일반으로 보태 마련했다.

정 사무국장은 “원정 자금 대부분을 산악회 내부에서 OB 선배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충당한 것이라 더 의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 산악회 활동은 결코 쉽지 않다. 정철경 사무국장은 “신입생 시절 경상대 산악회의 알프스 3대 북벽 등정 소식을 우연히 접하곤 막연한 동경에 가입했는데 막상 들어와보니 생각한 것보다 어마어마하게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일반 등산 동아리가 아니라 클라이밍이나 알피니스트(험난한 산을 대상으로 모험적인 도전을 하는 등산가)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혹독한 훈련의 연속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인다. 저기가 꼭대기인가 하며 능선을 넘으면 앞으로 또 능선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잠시 쉬었다 가고 싶은데 한번 쉬면 계속 쉬어야 될 것 같아 멈출 수가 없었다’ -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던 날 최임복 대장의 등반 일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인다. 저기가 꼭대기인가 하며 능선을 넘으면 앞으로 또 능선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잠시 쉬었다 가고 싶은데 한번 쉬면 계속 쉬어야 될 것 같아 멈출 수가 없었다’ -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던 날 최임복 대장의 등반 일지
엘브루즈 정상을 탈환하던 날.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엘브루즈 정상을 탈환하던 날.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었지만 힘든 등반을 같이하며 선배·동기들과 쌓아 올린 끈끈한 정이 매번 그를 붙잡았다. 사람이 좋아 함께 산을 타다 보니 어느새 7대륙 최고봉 중 디날리, 엘브루즈, 킬리만자로의 3개 봉우리에 올랐다.

대학 산악회 활동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취업난에 대학 생활의 낭만은 사라지고 취업과의 접점은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대학 산악회는 전국 어디를 가든 쇠퇴 일로에 놓여있다.

겨우 신입생을 받아도 힘든 산행을 몇 번 겪고 나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게 신입생 공백이 생겨버리면 다음 해도 문제다.

“가두 모집을 하려면 재학생이 좀 있어야 하는데 직장인 선배가 회사를 쉬면서 모집하러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재학생의 입대 등으로 맥이 끊어질뻔 했을 땐 대학원생들이 신입생 모집에 나서기도 하고 우여곡절이 참 많았습니다”

정 사무국장은 “간신히 남아 있는 고학번 재학생이 그만둘까 봐 진주지부 졸업생들이 1주일에 한 번씩 순번을 정해 술이며 밥이며 사주곤 했던 해프닝도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웃음을 지었다.

 

경상대 산악회는 방학이면 한 달간 장기 산행에 나선다. 2018년 여름 설악산 천화대를 등반하다 지는 해 앞에서 브이 자를 내보이는 재학생들.
경상대 산악회는 방학이면 한 달간 장기 산행에 나선다. 2018년 여름 설악산 천화대를 등반하다 지는 해 앞에서 브이 자를 내보이는 재학생들.


그런 노력 덕분일까. 올해 경상대 산악회 신입생은 4명(이지만 1명은 그만뒀다). 꿈도 모험도 현실과의 저울질 앞에 사그라드는 시대에 이 정도면 꽤 선방한 셈이다. 신입생을 포함해 10명의 재학생이 방학이면 한 달씩 설악산이며 지리산 깊은 골짜기로 장기 등반에 나서 빙폭을 오르고 암벽을 탔다.


그런 이들에게 올해 첫 아콩카과 원정은 준비과정부터 남달랐다.

지난 1월 24일, OB 주동호(46) 원정대장과 함께 남아메리카 최고봉인 아콩카과 정상을 밟은 YB 김준엽(23), 조우영(23) 학생은 군대를 제대하기도 전에 원정을 신청했다.


지난해 가을 같은 날짜에 제대한 두 학생은 제대하자마자 한달여 학교에서 함께 산악 훈련한 뒤 주 대장이 근무하는 양산으로 넘어가 또 한 달간 합숙 훈련에 돌입했다.

아콩카과 등반을 시작하던 날 호르코네스 입구에서 대원들과. 조우영 대원, 주동호 대장, 김준엽 대원(왼쪽부터)


낮에는 정 사무국장이 대표로 있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원정 경비를 마련하고, 밤에는 수영, 마라톤, 인터벌 등 산소 포화도를 높이는 훈련을 했다.

봉우리별로 원정대가 꾸려지면 휴일이면 1박2일, 2박3일씩 산의 특성에 맞는 훈련을 하는데 이 때 참석하는 것은 원정대 뿐만이 아니다.

원정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시간이 되는 다른 회원들도 참가해 함께 땀을 흘린다. 히말라야에 오를 때는 12번의 국내 훈련이 진행됐고, 셰르파나 포터의 도움 없이 60kg가량을 온전히 본인이 지고 올라야 했던 디날리 원정 때는 18차례 진행됐다.

그래서 원정을 위한 국내 합동훈련은 의도치 않은 재회의 장이 되기도 한다.

7번의 원정 중 5번째인 아콩카과 원정대장을 맡은 주동호 사무차장은 한동안 산을 멀리했었다. 지난 2000년, 세계 6위 봉 다올라기리 등정 길에 올랐다가 함께 갔던 이수호 선배가 눈사태로 유명을 달리한 것을 목격한 이후 자연스럽게 멀어진 산이었다.

그런 주 대장도 디날리 원정 대장이자 2기수 선배인 정 사무국장이 술에 취해 “동호야 보고 싶다”며 훈련 산행에 같이 가자고 전화를 걸어오자 그날 밤에 바로 차를 몰고 서울에서 집결지로 내려왔다.

당시 하던 사업 문제 등으로 고민이 많았는데 10여년 만에 다시 산에 오르니 예전의 열정이 다시 끓어 올랐다.

그날을 계기로 사업을 정리하고 정 사무국장이 대표로 있는 양산 회사로 일터를 옮겼다.

다시 주말이면 국내를 열심히 산을 탔지만, 다올라기리기 이후 20년 만에 해외 원정에 나서는 아콩카과행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원정대가 대장인 자신 외엔 군대를 갓 제대한 재학생 2명만으로 꾸려졌다 보니 기댈 곳이 없다는 점도 부담이었다.

통풍과 아킬레스 건염이 그를 괴롭힐 때면 “내가 포기하면 대원들은 기회를 잃는다” 되뇌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갓 돌이 지난 딸이 눈에 아른거렸지만 마음이 약해질까 봐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이전 4번에 걸친 원정이 모두 성공했던지라 저 때문에 꺾이면 안 되겠다 싶어 죽자 살자 올랐습니다”

아콩카과 정상에서 경상대학교 산악회기를 펼쳐들고.


3000m가 넘는 산을 오르려 하는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것 중 한 가지는 고소증. 극한의 조건에서 사고 체계가 마비되고 심하면 뇌수종이나 폐수종에 걸려 사망할 수도 있다보니 각별히 신경을 써야한다.

고소를 처음 경험하는 재학생 대원을 위해 순차적으로 고도를 조절해가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최근 발생한 구르자히말 김창호 팀의 사고 이후 진행된 산악 원정이다 보니 재학생들도 원정행이 쉽지는 않았다. 부모님의 걱정이 염려된 김준엽 학생은 전공(환경산림자원학과)과 관련해 남아메리카 숲 견학을 간다고 숨기기도 했다.

“원정대 발대식 하루 전에야 고백했는데 걱정은 하셨겠지만 제 앞에선 그냥 웃기만 하시더라구요”

가족에게 숨겨야 할 정도였는데 왜 원정을 자원했냐는 물음에 그는 “전역이 다가온 병장이 되니 갑자기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며 “아콩카과를 다녀오면 뭔가 얻는 게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답했다.

떠나기 전엔 막연히 ‘하면 된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라고 생각했지만 정상에 올라보니 깨닫는 건 하나였다.

“주위에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걸 느꼈어요. 같이 등반했던 사람뿐만 아니라 묵묵히 원정을 지원해주셨던 형님들이나 도움 주신 많은 분 덕분에 내가 여기 올라왔다고 생각하니 주변을 더 살뜰히 챙기게 됐습니다”

이제 경상대 산악회 원정대에 남은 목표는 단 2대륙. 최홍권 경상대 산악회 회장(54)은 “이번 7대륙 최고봉 원정이 산악회가 다시 중흥기를 맞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기존 회원 단합은 물론 산악회가 보여준 진취적인 기상이 널리 알려져서 산악회에 새로운 활력이 불어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글=백지영기자·영상=박현영기자

엘브루즈 등반 4일차. 고소 적응을 위해 3900m의 바렐 대피소에서 4700m 파트 코브락 구간을 왕복한다.
엘브루즈 정상을 탈환하던 날.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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