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의 경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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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4.1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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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바다를 주름잡았던 ‘동인도회사’
 
동인도 회사
동인도 회사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라는 이름만 들으면 얼핏 무역회사의 기능이나 역할을 한 것으로 오해될 수 있지만, 이 조직의 우두머리는 식민지의 총독을 겸하였기 때문에 오늘날의 무역회사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 17세기 초에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설립했던 동인도회사들은 군대를 앞세워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한 전략과는 달리,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무역을 완전히 독점할 뿐만 아니라, 회사 영토 내에서의 사법 및 치안권은 물론, 제한적인 외교권 및 군사행동권까지 행사하던 사실상의 총독부였었다. 가장 먼저 설립된 것은 영국의 동인도회사였으나 규모면에서는 2년 후에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훨씬 컸었다. 이후에 포르투갈, 프랑스, 스웨덴도 비슷한 성격의 동인도회사들을 설립하였다. 이들 각국의 동인도회사들은 후추, 커피, 사탕, 무명 등 동양의 특산품에 대한 무역 독점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가장 먼저 설립된 것은 1600년에 인도 및 극동 지역과의 무역을 촉진하기 위하여 국왕의 허가를 받아 조직된 영국의 동인도회사였다. 그 이전까지는 동인도의 향료 무역을 에스파냐(스페인)와 포르투갈이 독점하고 있었지만, 1588년에 영국이 에스파냐의 이른바 무적함대를 격파함으로써 마침내 영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도 향료 무역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네덜란드인들도 인도양 일대에서의 무역과 남방 지역에 대한 탐험을 목적으로 1602년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였다. 당시 네덜란드 정부는 원주민들에게 요새를 짓고 군대를 지닐 수 있는 권한과 네덜란드 정부에 충성을 맹세한 관리들이 행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권리 등을 부여하면서 통솔력이 뛰어난 총독들을 파견하여 강력한 통치를 행하였다. 이 기간 동안에 영국 함대를 물리치는가 하면 포르투갈까지 제치면서 동인도의 말레이 제도를 장악하기에 이른다.

16세기 초에 인도양을 지나 인도로 항해하는 뱃길 무역이 포르투갈에 의해 거의 독점적으로 운영되었고, 인도와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수입되는 후추로 유럽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이를 지켜보던 영국과 네덜란드도 인도로 향하는 해상무역에 직접 나서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인도에의 진출은 영국이 앞섰지만, 해상무역은 상인정신이 투철했던 네덜란드인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전개하였다. 영국은 무자비한 약탈에 의존하였던데 반하여 네덜란드는 아시아 지역에서 상업적인 거래를 통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여러 개의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무역에 나서자 가격이 폭락하고 회사들 사이에 경쟁은 치열해지게 되었다. 그러자 여러 개의 회사를 하나로 통합하여 국가가 관리하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출범시키게 된다. 세계최초의 주식회사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아무튼 이들 동인도회사들은 동인도의 여러 섬들을 정복하고 직접지배 또는 그 지역의 토착 지배세력을 통한 간접지배를 행하였다. 1619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바타비아(지금의 자카르타)를 거점으로 자바와 그 주변 섬들을 정복하고, 특산품을 직접 재배하거나 현지인으로부터 강제 매입하여 무역을 독점하였다. 그런 가운데 1652년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영국과 네덜란드 간에 전쟁이 계속 되었는데, 심한 타격을 입은 네덜란드가 영국과의 상업전쟁에서도 결국 지고 말았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네덜란드는 경쟁에서 밀려나고 프랑스가 후발 주자로서 영국과 패권을 다투었다. 영국과 프랑스 간의 경쟁은 ‘회사’들 간의 경쟁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양국은 상업 경쟁이 아니라 치열한 정치·군사 투쟁을 벌였다.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영국 동인도회사는 무굴제국을 대신하여 징세·행정권을 행사했다. 식민 지배를 회사 방식으로 수행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한 영국 정부는 19세기에 동인도회사를 해체하고 인도를 영국 정부의 직접 지배 아래 두었다. 산업혁명의 결과 생겨난 엄청난 경제력과 무자비한 기계적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제 대영제국이라는 초유의 광대한 지배체제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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